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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과 창조의 목적 (창1:1)

본문

I. 들어가는 말


지난 시간에 천지창조의 목적이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중대한 의문이 제기가 되는데, 천지창조의 목적이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위해 천지창조를 하셨다고 할 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이 이기적이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위해”라는 이 전치사를 인간들 안에서 통용되는 의미대로 하나님께 적용하여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무엇을 위한다’고 할 때 그 의미는 위하는 대상이 유익을 받거나 이익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실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충분하시고, 스스로 완전히 충족하신 분이므로 무엇인가를 밖으로부터 더 받아들여야지 온전해지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할 때 그것은 만들어진 창조된 피조물로부터 어떤 것을 갈취해서 하나님이 소유한다거나, 피조물들의 어떤 생산된 것을 하나님이 거두어가 자신에게 보태심으로 유익을 얻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서 어떤 태도를 갖고 있든 그것과는 상관이 없이 하나님은 자기 자신으로서 완전하시고, 불변하시고, 충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II. 하나님의 영광이란 무엇인가?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위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을 이해하기 쉽게 하면, 하나님이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이란 무엇일까요?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것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검증하고자 합니다. 우선 성경적으로 볼 때 이 하나님의 영광은 크게 세 가지로 언급됩니다.


A. 본체적 영광(본유적 영광, essential glory) : 거룩


첫째는 본체적인 영광, 혹은 본유적인 영광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존재를 가리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영광의 하나님”,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분이다” 라고 할 때, 바로 이런 영광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본체적 영광 혹은 본유적인 영광은 두 가지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하나는 외적인 초월성과 또 하나는 내적인 탁월성입니다.


1. 본체적 영광의 구성 요소 1 : 외적 초월성(하나님의 위대하심)


하나님의 외적 초월성은 인간이 도저히 하나님과 비교될 수 없고, 모든 피조세계 위에 놀랍도록 뛰어난 분이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 가지로 설명됩니다.


첫 번째는 존재하심과 시간과 공간에 있어 하나님의 무한하심입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인 반면,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분이라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목적과 약속에 있어 불변하심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자존성인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무엇인가에 의존해 있지만 하나님은 무엇에도 그 존재를 의존하지 않으시는 절대적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근원을 계속 추적해가면 마지막에 한 분에게서 모두 만나게 되는데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2. 본체적 영광의 구성 요소 2 : 내적 탁월성(도덕적 완전성)


두 번째는 내적 탁월성, 혹은 내적 완전성입니다. 그러면 내적 완전성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과 피조물에게서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성품을 가지고 계시지만, 또한 인간에게 부여하신 성품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 오래 참음, 의로움과 같은 성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안에 사랑이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는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그 사랑도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 우가 하나님과 공통된 성품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완전하신 성품 앞에 내게 있는 성품이 얼마나 하찮은가를 깨닫게 되는데, 이러한 효과는 하나님의 도덕적 완전성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적인 초월성과 내적인 완전성, 이 두 가지가 바로 하나님의 존재의 본질이고 이 자체가 바로 영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이 무한하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인간이 얼마나 티끌 같은 존재인지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비해지게 되며, 인간이 하나님 앞에 가지고 있는 사랑이 얼마나 더럽고 자기중심적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될 때 훌륭하게 살던 사람도 그 사랑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기가 죄인일 뿐임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본체적 영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B. 발로적 영광(발산적 영광, emanating glory)


그러면 이제 두 번째, 발로적 영광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겔10:4)”,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6:3)”, “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출40:34)” 등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인데, 이런 것들은 모두 본체적 영광이 밖으로 흘러나온 결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로 빛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발산적 영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발산적 영광의 나타남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인간에게 경험됩니다. 하나는 보편적으로 경험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별적으로 경험되는 것입니다.


1. 보편적 경험 : 본체적 영광의 발산이므로 어디에나 나타남


첫 번째, 보편적으로 경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 안에 이 본체적인 영광을 홀로 가두고 계시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이것을 밖으로 흘러내어 표현하기 원하셨습니다. 그 표현의 방식이 천지창조이고 이것이 천지를 창조하신 이유입니다. 그래서 창조된 피조물을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인지를 나타내게 하시고, 하나님이 창조해놓으신 세계를 계속해서 섭리하시고 통치하심으로서 창조세계를 통해 매일 매일 당신의 살아계심을 드러내십니다.


예레미야서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 때문에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모두 심판하시고 파멸되게 하셨는데, 그런 가운데도 아침에 눈을 뜨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피조세계를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편적으로 하나님이 당신의 발로적 영광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시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 노력을 요구합니다.


한 가지는 죄가 들어오므로 피조세계가 창조의 영광의 찬란함을 잃어버려서, 사물을 관찰해도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눈으로 보는 것만을 가지고 생각하면 안 되고 성경의 진리와 학문을 통해서 창조의 본래의 모습이 무엇이었는가를 추적해가야 됩니다. 성경을 기초로 학문에 도움을 받아가며 지적인 활동을 통해 그것들을 파고들어갈 때 본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죄로 인해 인간의 눈도 어두워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로 인해서 눈이 어두워지기는 했지만, 아직 시신경은 살아있는 소경처럼 사물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게 되어 이런 껍질이 벗겨지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겨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영적인 거듭남을 통해서 믿음의 눈을 가지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사물을 분간할 수 있는 인식 능력 두 가지를 주셨는데, 신앙과 지성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눈을 뜨게 됨으로써 이 지성은 훨씬 더 온전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세계에 깃들여있는 발로적인 영광을 보편적인 방법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2. 개별적 경험 :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 나타남


그런데 이것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개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항상 거룩하시고 어디든지 계시는 무한한 분이지만 특정한 장소에 임재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임재하시는 때에는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이 비추게 되는데 거기서 비추는 발로적인 영광의 빛은 굉장히 찬란한 빛이어서 때로 사람들이 거기에 엎드려지게 되고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경험하는 엄청난 발산적인 효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참된 부흥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발산적인 영광이 특정한 장소에 동시에 많은 사람에게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이 발산하는 영광 자체는 본체적인 영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탁월한 인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흥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가 팽창하고 많은 사람이 모여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나타나는 발산적인 영광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다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흥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모든 피조세계가 창조의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개별적인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발산적 영광을 인간이 경험하는 하는 것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최고의 특권이며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 발산적인 영광의 나타남은 어떤 사람이 경험하는냐에 따라 두 가지 효과를 가지고 옵니다. 하나는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나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고자 하거나 돌아간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먼저,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지 않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는 이 발산적 영광은 커다란 공포와 두려움으로 나타납니다. 그 이유는 발산적 영광이 있는 그곳에서 모든 인간과 피조물들을 원래의 창조의 목적으로 돌이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지 않은 모든 인간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자신을 창조의 목적으로 돌이키려고 하는 하나님의 의지를 자신이 도저히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발산적 영광 안에서 하나님의 무한하심과 불변하심, 그 위대하심을 경험하며 그 앞에서 자신들은 한없이 초라한 존재로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며, 커다란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려고 하거나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간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발산적 영광의 나타남은 경건한 두려움도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말할 수 없는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발산적 영광의 나타남 앞에서 하나님의 그 위대하고 무한하며 절대적인 권능을 가지고 이 모든 창조세계를 창조의 원래의 목적대로 돌이키고자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와 권능과 위엄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려고 애를 쓰고, 창조의 목적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위해서 눈물 흘리며, 아직도 죄가 잔존하고 있는 이 세상의 사라진 영광을 위해서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런 의지를 발견하는 것이 엄청난 위로이며 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3. 발산적 영광의 극치 :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


발산적 영광의 극치가 신약에 나타나있는데,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발산적 영광이 찬란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창조세계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렸다고 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입으신 육체는 그러한 세상의 피조물에 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으로 그 영광 자체이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 이 세상에 내려오실 때 그 발산적인 영광으로부터 비추는 찬란한 빛에 모든 사람이 압도될 것이기 때문에 그 광채를 감추지 않으시면 도저히 인간들 곁에 가까이 다가가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이 스스로 인성을 입으셔서 발산적 영광의 신성을 인성으로 감추시고 나타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다시 찬란하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사도 바울을 만났을 때 그 발산적 영광을 경험하면서 눈이 머는 역사가 일어난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오늘 우리에게도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막 살았을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도처에서 보여주셔도 그 영광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우리의 구주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내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직접 몰라도 예수를 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 감추어져있는 하나님의 신성의 충만한 것을 보는 것입니다.


C. 효과적 영광(반응적 영광, effective glory)


마지막으로 효과적 영광입니다. 효과적 영광이란 발산적인 영광에 대한 반응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응적 영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본체적 영광과 발산적 영광은 하나님이 당신의 임재(본체적 영광)를 특별히 보여주시는 곳에서 발산적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나기를 기도할 뿐 우리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본체적 영광은 인간에 의해 더해지고 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은 이 세상에 창조된 모든 인간들에 의해 높여지기도 하고 땅에 떨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높아지고 낮아진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 두신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가장 높이 여김을 받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창조의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가 그들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 여김을 받고, 그것을 통해 창조의 목적을 이탈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창조주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게 되는 때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영광이 온전히 드러나게 되어도 끝까지 강퍅한 마음으로 그 영광을 대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특별한 심판을 받기로 하나님 앞에 준비된 사람들입니다.


1. 효과적 영광을 위한 갈망 : 발산적 영광의 경험을 통해 이루어짐


그렇다면 본체적인 영광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발산적인 영광 또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면 마지막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가요?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남겨진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 효과적인 영광을 이 세상에 온전히 드러내기를 갈망하며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성화는 우리의 존재와 삶이 거룩해져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거룩의 지향점은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해놓으셨을 때 내게 기대하셨던 그 존재로 돌아가 이 세상이 창조의 목적을 돌아가는데 기여하며 사는 삶이 성화의 구성요소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강력한 경향성과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강력한 마음의 의지, 그렇게 살고 싶은 간절한 소원,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지 않은 모든 인생과 피조세계가 얼마나 허무한지를 아는 지성적인 변화 없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은 짐승과 같은 삶입니다. 이 세상은 미친 듯이 쾌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고칠 수 있는 이 땅의 유일한 사람은 창조의 목적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창조의 목적을 깨달은 사람들이 그토록 몸부림치고 가슴아파하는 이유는 나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인간과 피조물이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갈 때에만 이 땅에 두신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세상에서 주의 이름을 높이고 주의 이름을 송축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의 발산적 영광 앞에서 창조의 원래 목적으로 돌아가길 갈망하며 그 일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은 인생은 가장 비참한 인생입니다.


2. 발산적 영광의 경험이 효과적 영광을 향한 갈망으로 바뀌는 방법


이렇게 효과적인 영광을 향한 갈망은 발산적 영광의 경험을 통해서 불일 듯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사용하셔서 발산적 영광에 대한 경험이 효과적 영광을 향한 갈망으로 변화되게 하실까요? 여기에 대해 두 가지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지성을 사용하셔서 발산적 영광의 경험을 효과적 영광을 향한 갈망으로 바꾸어놓으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며 하나하나 깨달아가려고 기도하며 진실하게 노력하면 그 말씀은 우리를 놀랍게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없었던 우리에게 놀라운 능력을 제공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공부해가면 성령이 역사를 통한 발산적 영광을 찬란하게 경험하게 되는데 그 때 그 지식 속에 찬란한 빛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더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고, 일반학문은 이 성경의 사상에 의해서 통제되고 해명되며 공부해 나가게 됩니다. 일반학문이 성경진리의 통제를 받으며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신비함에 대한 많은 인식을 갖게 해줍니다. 이렇게 더 많은 지성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에게 발산적 영광이 비추게 되면 찬란한 기독교 사상가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성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똑같이 하나님을 만나도 ‘성경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와 ‘성경의 통제를 받는 가운데 이 세상 학문의 이치에 대해서 얼마나 잘 깨닫고 있는가?’에 따라 그에게 울리는 진리의 영향력은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에 발산적 영광이 비추지 않으면 모두 생명 없는 지식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며 내가 많은 것을 배웠으나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주님이 내 어두운 지성에 찬란한 영광을 비추어 창조의 목적이 무엇이며, 그곳으로 돌아가는 효과적인 길이 무엇이고, 또 그 길을 따라 살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해주시길 부르짖어야 됩니다. 그렇게 할 때 지성을 사용하셔서 발산적 영광의 경험을 효과적 영광에 대한 갈망으로 바꾸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두 번째는 마음을 사용하심으로 발산적 영광의 경험을 효과적 영광을 위한 갈망으로 바꾸어놓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속에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생각을 인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창조의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망입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은 인간이 그렇게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기적인 것이라고 부를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과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을 찬란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선(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도덕의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부류나 일개 집단에만 이익을 가져다주는 그런 종류의 선(善)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의 행복을 위한 도덕적 기준으로서 선(善)입니다. 그 선(善)으로 돌아감으로서만 이 세상은 참으로 세상이 될 수 있고, 이 세상이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갈 때 인간은 하나님을 가장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그곳에서 하나님이 가장 영광을 받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성도들의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갈망은 이렇게 모든 피조물과 인간이 창조의 원래 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선;善)에 대한 갈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은 이 갈망을 통해서 입증되는 것입니다.


III. 결 어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금석 하나를 제공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본분이 창조의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이 창조의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가기 위해 죄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는 모든 거룩한 삶의 원동력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랑은 반드시 이런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 세상에 대한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직도 이 세상에 있는 재물이나 남들이 자랑하는 미모나 건강, 안일한 삶의 환경 때문에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 세상의 악하고 망가진 상태를 보고서도 아파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이미 창조의 목적으로부터 멀어진 상태에 있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가지신 완전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향한 소원이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그것도 모자라 멸시와 욕을 당하게 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을 거스르기 위해서 지은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심판을 받게 하셨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창조의 목적을 거스르는 우리의 죄는 미웠지만 그 목적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차마 보실 수가 없어서 이 세상에 자기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가 돌아갈 수 없는 자리로 돌아가도록 성령님이 역사하게 하셔서 믿어지지 않는 복음, 남들이 받을 수 없는 은혜를 우리가 받도록 해주셨습니다. 이 시간에도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아갈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우리 모두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그들은 얼마나 비참한 인생들입니까?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 창조에 깃든 하나님의 신성에 충만한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감으로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인생들인데, 육신의 정욕에 눈이 어둡고 잠시 있으면 사라질 심판받을 육신을 위해 종노릇하느라 지엄하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부패한 욕심에 굴복하며 살아가는 인생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지 될까요?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순간도 말할 수 없는 열망으로 인생을 낭비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들을 위해 당신의 이 마음을 전하기를 원하시고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와 살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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