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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종소리 (창1:1-2)

본문

우리가 한 주간을 그래도 경건하고 깨끗하게 말씀대로 살았다면 신바람이 나게 하나님 앞에 나아와 정말 기쁘게 예배를 드릴 수 있지만, 원치 않은 일로 넘어지고 쓰러지고 부끄럽게 되었을 때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올 때 기쁘기는커녕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하는 무거운 마음에 얼굴을 들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깨끗하게 살다 온 사람들만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더럽혀진 몸으로 와도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안아주시며 주님의 피로 깨끗하게 씻어주십니다. 게다가 말씀도 먹여 주시고 생수도 마시게 해 주십니다.


한 유명한 목사님에게 한 성도가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 놓더랍니다.


“목사님, 저는 하나님의 아들답게 살려고 무척 노력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때도 묻고 형편 없습니다. 저는 구원 받은 자가 아닌가 봅니다.”


목사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답니다.


“저 개를 보세요. 저 개는 말썽도 피우지 않고 나를 볼 때마다 꼬리를 흔들며 기쁘게 해줍니다. 집도 더럽히지 않고 나를 귀찮게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부엌에 있는 저 아기를 보세요. 내 아들인데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을 많이 저지르는지 모릅니다. 아무 때나 똥과 오줌을 싸고 옷을 새로 사 입혀 주어도 금방 더럽히고 말도 잘 듣지 않습니다. 정말 골치 아픈 아들입니다. 그래도 나는 내 재산을 저 골치 아픈 아들에게 주지 개에게 주지 않습니다. 비록 형제가 부족하다 해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형제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형제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형제는 천국을, 모든 재산을 상속 받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귀하게 살아도 하나님의 자녀요, 때 묻히며 살아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니 귀하게 살아도 주님 전에 나아와 겸손하게 은혜를 받아야 되고, 막 살고 더럽혀졌어도 주님 앞에 나와야 새로워져 재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걸고 언제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와 승리하고 또 승리하며 실패해도 또 승리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말씀으로 우리를 재출발하게 하시고, 말씀으로 가다듬어 주시고, 말씀으로 용기를 주십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시는데 휴대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목사님께서 “예배 시간에 휴대폰을 끄라고 그만큼 했으면 꺼야지, 또 안 껐군요.”하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다시 하시는데 목사님의 호주머니에서 휴대폰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 당당하게 폰을 꺼내시더니 “예, 하나님. 말씀하세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온 교우들이 한바탕 웃었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성도가 하나님과 대화를 해야 하지만 목사님들은 특별히 하나님과 가까운 대화를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교인들이 모든 일을 제쳐놓고 교회에 오는 것은 예배드리기 위함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함이지, 목사의 강연을 들으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창세기를 강해할 때도 제 말이 나가지 않고 저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만 증거되도록 여러분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때때로 저는 21, 2년 전에 섬겼던 서산교회의 성회를 생각하곤 합니다. 거기에서 감명 깊은 간증을 많이 들었는데, 특별히 김경용 장로님의 간증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90이 넘으신 분이 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계셔서 민망했던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장로님, 편히 앉으세요.”


“아닙니다, 목사님. 저는 하나님의 종인 목사님과 전도사님 앞에서는 절대로 편하게 앉지 않습니다.”


“장로님, 그래도 지금은 편히 앉으세요.”


“목사님, 저는 하나님의 종 앞에서는 무릎을 펴고 앉지 않습니다.”


지금도 제가 새신랑 같은데 20년 전에는 얼마나 어렸겠습니까? 장로님이 총각같은 어린 목사 앞에서도 무릎을 꿇고 앉아 계셔서 저도 무릎을 꿇고 차를 마시며 장로님과 대화를 했습니다. 장로님께서 하신 말씀 중 지금도 제게 특별히 기억되는 것이 있습니다.


장로님께서 청년 시절에 교회에 다니면서도 천국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계신 것 같기도 하고 안 계신 것 같기도 해서 긴가민가했답니다. 그런데 하루는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경험하게 되었답니다.


목사님께서 팔복에 대해 설교하실 때, 그 순간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한 나병환자의 상처가 없어지고 피부가 새로워졌답니다. 나병환자가 깨끗하게 되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본 장로님이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구나!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구나!’하고 그 때부터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겼답니다. 그래서 서른이 조금 넘은 나이에 장로님으로 피택 받았는데, 그때 그분이 고민을 했답니다. 이웃 교회의 장로님들 중 몇 분이 장로님이 된 후에 “나는 교회의 어른인데…….” 하다가 망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장로가 되어서 망하면 안 되지. 겸손한 장로가 되어야지.’하며 ‘하나님, 어떻게 하면 겸손하게 봉사를 할 수 있을까요?’하고 기도하는 중에 종 치는 일이 생각나더랍니다. ‘아! 하나님의 인도구나.’라고 생각한 장로님이 새벽마다, 주일 낮마다, 주일 밤마다, 삼일마다 종 줄을 잡고 종을 친 것이 60년이 지났답니다. 90이 넘은 그 때까지도 종을 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목사님, 제가 종 줄을 잡았더니 하나님께서 제 가족들의 건강의 줄을 잡아주셔서 한평생 병원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안이 이렇게 복을 받았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60년이 넘도록 종을 치며 충성하신 장로님의 그 귀하신 모습이 몹시 향기로워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시계가 있는 집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종소리를 들으면 ‘아, 새벽 예배 첫 종이구나. 이제 곧 새벽 예배가 시작되겠구나.’하고 알았습니다.


그런데 새벽 기도를 알리는 그 종소리는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교훈을, 의미를 전달합니다. 누워 있는 사람에게는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하는 소리로, 교회에 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천당, 천당, 천당’하는 소리로 느껴집니다. 저는 ‘땡그랑 땡 땡그랑 땡’하는 종소리를 들을 때면 가슴속 깊은 곳에 ‘천당 천당’하는 느낌이 왔습니다.


종소리와 함께 종소리 속의 교훈이, 의미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종을 칩니다. 그 종소리는 ‘시작하는 시간이다.’ ‘마치는 시간이다.’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우주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 같은,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은 먼저 이 광활하고 신비로운 우주를, 하늘과 땅을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선명하게 알려줍니다. 


저는 매일 창세기를 읽습니다. 눈을 뜨면 먼저 기도하고 창세기 1장을 읽는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라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우주에 울려 퍼지는 위대하고 거대한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 종소리는 오고 오는 세대까지 계속 울려 퍼지는 것 같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위대한 종소리 같은 말씀을 읽을 때마다 제가 얼마나 큰 감동을 받고 감사하는지 모릅니다.


미켈란젤로가 마리아 상을 만든 다음 스스로 도취되어 “사람이 만든 작품이 어찌 이렇게 훌륭할 수 있는가?”하며 마리아 가슴 띠에 자기 이름을 기록하고 사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흥분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의 눈앞에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아름다운 산천, 꽃과 벌, 광활한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그 순간 그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대하고 놀라운 이 우주를 지으시고도 사인하지 않으셨는데, 나는 이 작은 작품 하나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도취되어 사인을 하다니…….’


그 후로 미켈란젤로는 모든 작품에 그의 이름을 기록도 하지 않고 사인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의 작품이 너무 탁월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보면 “아, 이것은 미켈란젤로의 것이구나.”하고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사인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별,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도 우연히 있을 수 없고 사람이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는 것을 우리가 감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 우주를 보면 참 신비롭습니다. 어떻게 지구가 날마다 23.44도로 자전을 하면서 또 태양을 도는지, 어떻게 달이 지구를 돌면서 함께 태양 궤도를 도는지 신비롭습니다. 또 그 스피드가 1초도 어김없습니다.


메릴랜드 주의 한 기계회사에서 인공위성을 발사하기 위해 컴퓨터로 10만 년 전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태양 궤도의 진행을 체크하니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24시간이 없어진 것입니다.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아무리 연구를 해도 없어진 24시간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인공위성이 충돌할 수 있어서 계속하여 그 이유를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때 한 타이피스트 여직원이 연구소 소장에게 말했습니다.


“소장님, 저는 교인입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수아가 기도할 때 태양이 거의 하루 종일 멈췄다는 사건이 있습니다.”


소장은 “웃기는 소리 하지 말아요.”하고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나 그 여직원의 말이 자꾸 메아리쳐 성경을 구해다가 아무도 몰래 여호수아서를 읽었습니다. 그는 여호수아 10장에 가서 충격을 받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족속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여호와께서 아모리 족속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맡기시던 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칼로 아모리 족속을 치고 있는데 해가 지려 했습니다. 만일 해가 져서 적을 다 치지 못하여 도망갔던  적들이 다음에 다시 무장하여 쳐들어오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다급해진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태양아! 기브온 위에 머물러 있으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멈추어라.”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믿음의 기도를 받으시고 거의 하루 종일 태양과 달을 멈추어 서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소장이 컴퓨터에 들어가 여호수아 시대로 거슬러 가 보니 없어졌던 23시간 20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면 40분은 어디에서 없어졌을까?’하고 궁금해 하던 그는 ‘혹시 그 40분도 성경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떨면서 성경을 읽어나갔습니다. 그러다 열왕기하 20장에서 또 충격을 받았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전심으로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를 살려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증표로 해 그림자를 10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해시계는 원점으로부터 360도가 한바퀴이고 10도가 40분입니다. 그러니 나머지 40분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소장은 무릎을 꿇고 “오! 정확무오하신 하나님, 하나님 앞에 제가 무릎을 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이 우주를 우연히 짓지 않으시고 정확하게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몰랐습니다. 이 우주를 위대한 분이 만드셨을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분이 하나님이신지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종을 울리듯 선명하게 말씀하셔서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만드셨음을 우리가 알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인생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훤히 알고 갑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는 것을 훤히 아는 것입니다.


다른 데는 답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진화론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학설에 불과합니다.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되는 중간 고리 화석도 없고 사람 같은 원숭이도 없고 원숭이 같은 사람도 없습니다. 진화론은 하나의 가설입니다.


원숭이와 사람은 너무 다릅니다. 원숭이가 속옷 하나 걸치는 것을, 손수건 하나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원숭이가 생일을 맞이했다고 꽃을 꺾어서 ‘happy birthday’ 하고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까?


따라 합시다.


“원숭이는 원숭이다.”


어느 중학교 생물 시간에 선생님이 진화론을 가르치면서 “원숭이가 우리 조상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기독교인 학생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선생님도 원숭이 후손이란 말입니까?”


“말하자면 그렇지.”


“그러면 선생님은 원숭이의 몇 대손입니까?”


“야 이놈! 수업이 끝나면 교무실로 와!”


수업 후 학생이 교무실에 갔습니다.


“너 예수쟁이지?”


“예.”


“네가 믿는 하나님을 보여주라. 그러면 나도 믿을게.”


“선생님, 정신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야, 이놈아! 내가 정신이 없기는 왜 없어. 있지.”


“선생님, 정말 정신이 있습니까?”


“있지.”


“그러면 선생님의 정신을 한 번 보여주세요. 그러면 저도 하나님을 보여 드리지요.”


“이 맹랑한 놈!”


그 학생의 말에 선생님이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보십시오. 나무가 바람에 꺾여 500년이 지나면 책이 되어 나올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만들어야 책이 됩니다. 바다의 모래가 한 100만 년 뒹굴면 강대상이 되어 나옵니까? 아닙니다. 만들어야 강대상이 나옵니다. 쇠를 억만 년 놓아두면 마이크가 됩니까? 아닙니다. 만들어야 마이크가 됩니다. 오래 되면 고장나는 마이크도 만들어야 나오는데, 몇 천 년이 지나도 고장이 나지 않고 기름을 붓지 않아도 계속 타오르는 태양, 이 신비로운 우주가 어떻게 그냥 나왔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만들었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시면 사람이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 놀라운 우주를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사람도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다 아니 궁금한 것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다 알고 사니 얼마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목회하는 것이 어렵지만, 목회를 알면 쉽습니다. 목회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맞추려 하니 어렵지, 사람에게 맞추지 않고 하나님께 맞추어 나가면 하나님께서 다 인도해 주십니다. 알고 나면 다 쉽습니다. 우리가 모르니 어렵지, 알면 다 쉬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이것은 엄청난 지식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자기에 대한 지식도 가짜고 세상에 대한 지식도 가짜입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한평생 연구하는 철학자도, 그 학문도 가짜입니다. 물음표(question mark)로 시작해서 물음표(question mark)로, 해답 없이 끝납니다.


그러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이 한 마디 말씀만 받아들이면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알고 세상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아는 우리는 감사하며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이 우렁찬 종소리 같은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태초 전부터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이심을 웅변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에 서 있는 것은 제게 부모님이 계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계신 것은 여러분의 부모님이 계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여기에 바이올린이 있는 것은 바이올린을 만든 사람이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우주가 있는 것은 이 우주를 만든 분이 계셨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는 태초 전에, 우주를 만들기 전에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주나 사람이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지으셔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조’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보면 네 가지 뜻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두 가지는 ‘바라’와 ‘바나’입니다


‘바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Nothing에서, 아무것도 없는 데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창조는 ‘바라’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만드는 것입니다.


‘바나’는 있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 여자를 만드신 것은 ‘바라’가 아니고 ‘바나’입니다.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실 때는 있는 것으로 지으셨지만, 이 모든 천지를 창조하실 때는 없는 것에서 지으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있는 것으로, ‘바라’로 창조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시간 전에 벌써 영원히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알려줍니다. 시간도 창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신비롭게도 하나님은 만드신 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계셨는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냥 계십니다. 할렐루야!


따라 합시다.


“하나님은 본래부터 계신다.”


출애굽기 3장에 보면, 모세가 양떼를 몰고 꼴과 물을 찾아 서편으로 서편으로 옮기다가 호렙산에 이릅니다. 호렙산의 한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을 보고 ‘산불이 났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불이 번지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았습니다. ‘이상한 불이구나.’하고 가까이 가는데 “모세, 모세!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모세가 엄청난 충격으로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내 백성이 애굽에서 당하는 고통을 보고 그 신음 소리를 듣노라. 내가 내 백성을 구원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옮기리라. 네가 가서 그 일을 감당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오! 하나님, 우리 백성이 어떤 하나님이 보내서 왔느냐고 물으면 제가 무어라 대답할까요?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제가 어떻게 대답할까요?”


그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I am who I am.)” (출애굽기 3:14)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만들어지신 분, 누구와의 사이에서 나신 분이 아니고 스스로 영원히 계신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로 인격이 셋인데 한 분이십니다.  ‘엘로힘’이라는 히브리어는 복수이면서 단수인 이상한, 특별한 명사입니다.  


요한복음 1장 1, 2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이 예수님이신데, 태초에 벌써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도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신은 성령인데 성령께서는 태초부터 계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Jesus Christ is the same yesterday, today, and forever.)』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우리가 섬기는 아버지가 만 년 사시다가 늙고 병들어 돌아가시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하도다 영원하도다」하고 찬양합니다. 또 그 영원하신 성령을 우리가 받아서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처럼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한복음 11:25-26)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죽어도 우리의 영혼은 죽지 않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태초 전에 계셨다는 것이고, 또 하나님을 믿으면 믿는 그 사람이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굉장한 종소리 같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우렁차게 울리는 종소리 같은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웅변적으로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광활한 우주를 지으신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를 살게 하시려고 이 우주를 지으셨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여기에서 복을 받으며 살라고 이 우주를 만드신 것입니다.


이사야 45장 18절에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할렐루야!


이 엄청나게 많은 별들 가운데 사람이 사는 별은 신비롭게도 지구별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구에만 아름다운 산천을 만드셨습니다. 꽃을 지으신 것도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아름다운 꽃을 보며 기뻐하라고, 결혼식장에 장식하라고, 결혼 기념일에 꽃을 선물하라고 우리를 위해 지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결혼 기념일이나 아내 생일에는 아내에게 꽃을 선물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루 종일 날아다니며 꿀을 만드는 벌을 지으신 것도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 꿀을 먹이시려고 벌을 만드신 것입니다. 부지런히 먹고 살찌는 돼지를 지으신 것도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열심히 꼴을 먹는 소도 우리를 위해 지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우유와 버터와 고기를 주시기 위해 소를 지으신 것입니다. 달걀을 낳는 닭도, 바다의 물고기도 우리를 위해 만드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생선을 먹을 때든 육고기를 먹을 때든 미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물고기를 맛있게 먹으면 물고기들은 아마 ‘감사합니다. 제 사명을 다했습니다.’라고 하며 우리에게 고마워할 것입니다. 닭을 잡을 때 살생한다며 미안해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 살생하지 말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든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맛있는 배, 사과, 감, 땅콩도 다 우리 사람을 위해 지으셨습니다.


또 우리가 살기 좋게 공기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대기권 밖으로 나가면 공기가 없습니다. 이 지구에만 산소가 있습니다. 이 지구에만 비가 오고 눈이 옵니다.


우리 하나님께 감사의 박수를 올려 드립시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만들어 주셨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아들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천국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세상도 살 만한데, 천국은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그것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우리가 창세기 1장 1절 말씀만 제대로 깨달아도 너무 좋아서 미칩니다. 하나님께 미쳐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고마워요. 하나님, 고마워요.”하게 됩니다.


부족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그리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울리는 종소리 같은 말씀을 깨달으면 ‘그래, 온 우주를, 천국을, 모든 것을 다 선물로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은혜를 갚으며 살아야지. 나는 아버지를 위해 살아야지.’하는 감동으로 하나님을 위해 사는 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목회하면서 저는 형제에게도 받기 어려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오래 전에 제가 네 분에게서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친형제에게도 받기 어려운 큰 선물을 받아서 제가 매일 그 네 분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합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선물을 다 받았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은 마땅히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숨을 쉬는 것도 주님을 위해, 먹고 마시는 것도 주님을 위해, 운동도 주님을 위해, 옷을 입는 것도 주님을 위해, 결혼도 주님을 위해, 살아도 죽어도 주님을 위해, 이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시간을 바쳐 예배 드리는 것을 제일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지각하는 것은 온전한 시간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 드리기 전에 달려와서 기도하고, 축도 후에도 돌아가기 싫어 조금이라도 더 교회에 오래 앉아 있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받아 놓고도 십일조 드리는 것을 아까워한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없고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깨달으면 십의 이조인들, 십의 삼조인들 못 드리겠습니까? 우리가 살아 있을 때 기쁨으로 드리고 땀 흘려 봉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집에서 소와 돼지가 함께 살았습니다. 소는 늘 주인의 사랑과 칭찬을 받는데, 돼지는 늘 “더러운 돼지, 욕심 많은 돼지.”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루는 돼지가 소에게 말했습니다.


“소 형, 소 형, 나는 억울합니다. 형이 사람들에게 우유와 고기와 버터를 주지만 나도 사람들에게 삼겹살도 주고 햄도 주고 베이컨도 주는데 왜 사람들은 형만 좋아하고 나는 푸대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그러자 소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나는 살아 있을 때도 우유와 버터를 주지만, 자네는 죽은 후에라야 고기를 내놓으니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충성을 한다고 하면서도 ‘나중에 형편이 나아지면 하지. 내가 죽은 후에 내 재산을 드려야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돼지의 충성과 같습니다. 살아 있을 때 우유 같은 십일조를 드리고, 살아 있을 때 버터 같은 전도, 버터 같은 교회 청소를 할 때 아름다운 봉사가 되는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살아 있을 때 전력을 다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지으셔서 우리에게 주시지만,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께서 짓지 않으십니다.


우리 교회를 지을 때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장로님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때 저희 식구들도 몇 년간 거의 김치만 먹었습니다. 아이들 도시락 반찬도 거의 날마다 김치와 어묵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아이들이 ‘어묵’ 생각만 해도 몸서리친다고들 합니다. 교회를 짓는 동안 모두 함께 정말 고생했습니다. 그때 제가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이라면 하늘에서 시멘트와 벽돌이 우두두둑 쏟아지게 하고 천사를 보내어 하룻밤에 다 짓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짓는 우리를 왜 이렇게 고생시키십니까?”


하나님의 응답이 어떠하셨는지 아십니까?


‘내 집은 너희가 지어야 한다. 너희의 눈물과 기도와 헌금으로 힘들게 지어야 된다.’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힘들게 짓고 나니 얼마나 좋았습니까? 막 춤을 추고 싶고, 길을 가다 보아도 좋고,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가 얼마나 복을 받는지 모릅니다. 아버지의 집이라고 지었는데, 우리가 여기에서 예배드리며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습니다.


또 교회를 지은 다음에 우리 교회가 받은 복이 한이 없습니다. 가정마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얼마나 잘 되고 사업이 얼마나 잘 되는지 모릅니다.


만일 천사들이 교회를 다 지어주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얼마나 미안하겠습니까?


우리가 힘들여 교회를 지었으니 교회만 보아도 눈물이 나오고 좋은 것입니다. 다 같은 내 자식이라도 힘들고 어렵게 낳은 자식이 더 귀하게 여겨지듯이 우리가 힘든 가운데 지은 교회가 더 귀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집을 지어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을 주십니다.


‘네가 내 집을 짓는다고 수고했다. 네가 내 집을 지었으니 내가 큰 상으로 네 집을 지어 주겠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은혜를 주시려고, 더 큰 기쁨을 주시려고 성전을 짓게 하시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에는 약 4만 5천 마리의 동물이 들어갔습니다. 4만 5천 마리의 동물이 들어가려면 기차 188대만 있어도 됩니다. 그런데 노아의 방주는 기차 522내 분의 용적량이었습니다. 그러니 노아의 방주에는 4만 5천 마리가 아니라 9만 마리, 12만 마리의 동물이 들어가도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많은 사람이 와도 편안히 예배드리고 먹고 마실 수 있는 노아의 방주같은 큰 방주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수년 전부터 ‘하나님, 7천석 교회를 주십시오. 7천석 교회를 주십시오. 7천석이 안 되겠으면 5천석이라도 주십시오.’하고 기도했습니다. 7천석 교회가 되고 부속 건물이 들어서면  만 명이 함께 예배 드릴 수 있고, 4부로 예배를 드리면 4만 명이 예배 드릴 수 있으니 아이들을 합하면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대로 십만 명 제단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힘 주시는 대로 우리가 되겠지만, 이번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큰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시간과 정성을 바쳐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이룰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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