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하나님 이름(1)엘로힘(Elohim) (창1:26-28)

본문

도장 새기는 집에 한 손님이 왔다고 합니다. “도장 하나 새기는데 얼마입니까?” “예, 천원입니다.”/“한자나 한글이나 값이 같습니까?” “예, 같습니다.”/“이름자가 길건 짧건 값이 같습니까?” “아, 물론이죠”/이 말을 듣자 손님이 도장에 새길 이름을 내 놓았다고 합니다. 한 참을 들여다 본 도장집 주인이 묻습니다./“어느 것이 이름입니까?” “그게 다 이름인데요?”/“이게 한 사람 이름입니까?” “그렇다니까요?”/“아니 선생님, 이런 긴 이름이 어디 있습니까?” “있습니다. 제 아들입니다.”/“선생님, 혹시 저를 놀리시는 것 아닙니까?” “놀리다니요 분명히 제 아들 이름인데요” 도장 집 주인이 계속 못 믿는 표정을 보이자 손님은 호적등본을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도장집 주인은 입을 다물지 못하는 표정이었다고 합니다. “원, 세상에 이렇게 긴 이름이 호적에 오르다니--” 거기에 적힌 이름은 “밝 차고 나온노미 새미나”였다고 합니다. “복을 차고 나온 것을 남들이 샘낸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배우리 지음 [고운 이름 한글 이름]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제일 긴 한글 이름은 “황금 독수리 하늘을 날며 세상을 놀라게 하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긴 이름을 가진 사람은 유명한 피카소였다는 확인하기 어려운 유머도 전해집니다. 그의 훌 네임을 들어본 일이 계십니까? “파불로-딩고-호세-프란시스코-드 파우라-호안-드로스-레메디-오스--크리스피노-드 라산티스마-트리니나드-루이즈-피카소.” 보통은 "Pablo Ruiz Picasso"라고 하지요. 피카소의 성격과 기질상 그런 이름을 가질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름은 캐럭터 곧 성격이요 기질이요 품성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함께 연구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다양하고 여럿입니다. 왜 성경은 하나님의 이런 다양한 이름을 소개할까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어떤 한 이름으로 나타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양한 이름을 이해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총체적으로 알아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참으로 누구인가를 이해함으로 우리는 그를 진실로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9:10에서“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첫째로 생각할 하나님의 이름은 “엘로힘”입니다. 엘로힘은 본래 “엘”(El) 혹은 “엘로아”(Eloah)의 복수형입니다. 엘이란 말의 뜻은 “강한 자‘ 혹은 ’능력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엘이란 단어는 히브리어 성경에 200회가 등장하고 복수형 엘로힘은 2,500회나 등장합니다. 창세기 1장에만도 31회나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창1;1에 “태초에 하나님이--”할 때에 하나님이 바로 엘로힘입니다.자, 그러면 우리가 이 하나님의 이름 엘로힘을 통해 알아야 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1.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창1:1은 바로 엘로힘이 하늘과 땅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단어로 엘로힘이라는 복수형이 사용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엘이라 하지 않고 엘로힘이라고 했느냐는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대체로 두 가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창조사역에 함께 동참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엘로힘의 어미형 “im(him)"은 일반적으로 세가지 이상의 존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창1:26에도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하실 때 ‘우리’라는 복수인칭 대명사가 사용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이 천사를 동원하여 천지 창조를 하셨기 때문에 ‘우리’라고 하셨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성경 어디에도 천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라는 말은 없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로 계시는 하나님 그러나 그 하나님의 일체적인 사역이 바로 천지 창조의 근원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 가능한 해석은 히브리어에서 복수형은 종종 위엄이나 초월적인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다는 것입니다.성경은 매우 일관성있게 창조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의 결과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롬1:20을 보십시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현대 과학의 발달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과학은 아직도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한 부분을 터치하고 있을 뿐 창조의 대부분의 영역은 여전히 신비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창조의 신비를 알면 알수록 느끼면 느낄수록 우리는 창조의 주님께 엎드려 그분을 찬양하고 경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찍 신학자 칼 바르트는 예배와 과학은 동일한 동기에서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창조세계의 신비에 대한 경외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엘로힘 하나님께 그의 피조물인 인생이 드려야 할 최고의 반응이 있다면 바로 찬양과 경배인 것입니다. 계4:10-11에 모든 시대를 대표하는 24장로들이 천국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며 드리는 고백을 다시 묵상해 보십시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계4:11) 왜 경배합니까? 그가 만물의 창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찬양합니까? 그가 만물의 창조자 엘로힘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배우는 엘로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2.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창세기 1장은 엘로힘 하나님의 창조사역가운데서도 그 절정이 인간의 창조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지 창조의 마지막 제6일의 마지막 창조사건을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창1:26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여기 하나님이 바로 엘로힘이십니다. 그는 강하고 능력있는 분, 전능자이십니다. 그의 초월하신 능력으로 빚으신 최고의 걸작품이 바로 하나님을 닮은 인간인 것입니다. 여러분, 도대체 인간의 존재보다 더 신비한 존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유명한 크리스챤 의사로서 작고한 폴 브랜드는 필립 얀씨와 함께 쓴 그의 명저 ‘오묘한 육체’에서 그가 의사로서 처음 살아있는 세포를 관찰한 감동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살아있는 세포의 존재야 말로 지상의 최대의 경이중 하나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진정한 생명의 경이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깨어있는 하루 종일 이 세포의 비밀을 경탄하며 말해도 부족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내 생애중 누구라도 이 세포의 신비를 설명하는데 성공한다면 나는 공중 광고문을 쓰는 여러 비행기를 전세 내어 하늘 높이 나르며 내 돈이 바닥날 때까지 온 하늘에 감탄 부호를 연달아 그리게 할 것이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9개월에 걸쳐 정교한 방법으로 기능을 나누는 세포들--수십억개의 혈구가 생겨나고 수백만개의 간상체와 원추체가 생겨나는데 단 하나의 수정된 난 세포에서 10조개에 이르는 세포가 생성되고 그리고 마침내 한 아기가 인간이 태어난다. 도대체 그 무엇으로 이 신비를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우리가 할 일은 시편기자와 더불어 감격하고 감사할 일 뿐입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신묘 막측)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14) 폴 브랜드의 묘사는 주로 우리의 육체에 대한 것이지만 인간의 영혼은 또 얼마나 신비로운 것입니까?인간의 영혼이야 말로 하나님의 인격과 품성이 깃들어 있는 존재의 지성소인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엘로힘 다음으로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의 하나가 “그 종류대로”라는 말입니다. 말은 말같이, 소는 소같이, 사자는 사자같이, 원숭이는 원숭이같이 그 종류(종자)대로 지음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람에게 오면 달라집니다. 사람은 사람같이가 아니라 사람은 하나님같이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엘로힘 하나님은 당신의 놀라운 능력으로 당신을 닮은 존재를 지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처럼 인격을 가진 존재, 알고 느끼고 판단할수 있는 존재, 사랑할 수 있고 창조할 수 있는 존재로 지음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이요 기대의 대상인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엘로힘 하나님의 기대를 이루어 드리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그의 기대를 이루어 드리는 인생은 그와 더불어 교제하는 데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분과 교제의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분의 기대를, 그분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죄를 짓고 타락함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실한 인생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가장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 교제의 회복을 기대하심이었던 것입니다. 

고전1:9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엘로힘의 하나님은 우리의 경배를 기다릴 뿐 아니라 우리와의 교제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3.인간을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엘로힘은 하나님이 자신을 닮은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신 다음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축복하신 일입니다. 

창1:28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엘로힘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의 범죄와 타락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축복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의지는 변하지 않습니다. 물론 인간이 범죄할 때 하나님의 일시적인 징계와 심판은 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3:33의 말씀은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보여주시는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로다” 징계가 본심이 아니고 축복이 본심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인생이 돌이킬 때마다 축복을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이 지난후 엘로힘 하나님의 첫째로 하신 일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창9:1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축복의 사역이었습니다.엘로힘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과 교제할 뿐 아니라 그분의 축복을 누리며 그분의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는 것을 기대하십니다. 

최근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의 “긍정의 힘”의 저자이며 미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휴스턴 레이크 우드 교회의 목사인 조엘 오스틴은 축복을 사역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와 그의 교회의 교우들은 축복을 서약하고 축복을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그의 교회가 축복을 사역화한 이후--설명이 가능하지 않은 놀라운 축복들을 경험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비판은 마무리 건강한 비판까지도 악한 인생의 행동을 다소 늦추거나 교정할 수는 있지만 비판만으로 인간은 변하지 않습니다. 축복은 인간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아내가 변하지 않는 이유-남편이 아내를 축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변하지 않는 이유-아내가 남편을 축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변하지 않는 이유-부모가 자녀를 축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변하지 않는 이유-자녀들이 부모를 축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축복의 기도만 하고 축복의 말만 하기로 결심해 보십시오. 우리 모두가 축복의 통로가 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 날 것입니다.방향만 바꾸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기로 결심해 보십시오. 그것이 회개입니다. 저주의 삶을 청산하고 축복의 하나님께로 돌이키십시오. 비난과 비판의 습관대신 칭찬과 축복의 습관으로 돌아 서십시오. 고집스런 이기심의 항해를 청산하시고 항로를 바꾸어 보십시오. 지금 모습 그대로 가겠다는 것은 마귀가 내 마음에 심어놓은 고집입니다.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배 한척이 칠흑같은 어둠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선장의 시야에 불빛이 들어옵니다. 너무 놀라서 긴급 무전을 타전하여 상대방에게 “방향을 동쪽으로 10도만 트십시오”라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곧 답신이 돌아왔답니다. “그럴수 없소. 당신이 서쪽으로 10도만 트십시오.” 화가 난 선장은 다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나는 해군 함장이다. 네가 항로를 변경하라” 몇초후에 다시 메시지가 들어왔습니다. “저는 이등수병이지만 그래도 제가 방향을 바꿀수는 없습니다. 함장님이 먼저 항로를 바꾸셔야 합니다.” 화가 극도로 치민 함장은 최후통첩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 배는 전투함이다. 앞으로 전진한다” 그러자 퉁명스런 메시지가 돌아왔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마음대로 하십시오. 여기는 등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남편, 아내, 자식에게) 회개를 요구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먼저 방향을 바꾸셔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가르치신 삶의 방식을 따라 살기 시작해 보십시오. 그때부터 우리의 인생은 엘로힘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