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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물 (롬1:1-7)

본문

바울이 복음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 본래 그 단어는 복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란 말에서 시작되었다. 복음의 사자란 말은 근원이 펠로폰네서스 전쟁에 이른다. 페르샤와 아테네가 전투가 붙었다. 페르샤의 대군은 바다와 들판을 덮었다. 백만 대군을 당해낼 길이 없음을 안 아테네 시민들은 먼 산 속에 피난해 숨어 있었다.


당시에 전쟁에 진다는 것은 무서운 대가를 요구하였다. 남자들은 죽고 아이들과 여자들은 모두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모든 재산은 약탈당하고 만다. 한 전령이 먼 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아테네의 군인이었다. 길은 42킬로미터가 넘었다. 그는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겨우 동포들 앞에 가서 한 마디를 하고는 숨이 끊어졌다.


"승리는 우리에게!" 놀라운 소식이다. 공포와 절망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노예가 정복자로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도 두려워했던 사람들이다. 자신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를 위해 그렇게 해주었다. 이것이 복음의 의미이다. 복음은 이처럼 듣는 즉시 엄청난 효력을 발휘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일 수 없다.


복음의 내용은 이것이다. "하나님이 성경에 약속하신 대로 그의 아들을 보냈다. 그가 죽었고 부활했다"는 것이다. 무슨 약속인가? 우리를 고통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그가 죽고 산 것은 무슨 의미인가? 우리의 죄에서 병과 가난과 썩어짐에서 영원한 죽음에서 구하시되 영원히 하신다는 말이다. 저주의 노예로 있던 인간이었다.


이제 그 복된 소식을 받아들여 믿는 사람은 그 내용대로 영광스런 존재로 변한다. 하나님의 의와 지혜와 진리로 기쁨과 평안과 권세로 옷 입는다. 이제 그 일이 그리스도를 통해 눈앞에 확실하게 일어난다. 그 모든 구원의 일이 우리의 삶에 나타난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그것을 경험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진다.


1. 복음은 하나님에 의해 약속되었다


최초의 인류가 타락하는 날 저주는 주어졌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이것이 인간이 경험할 삶이다. 왜 그런가? 뱀을 향하여 하신 말씀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때문이다. 인간은 사탄에게 지배당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사람들의 고통과 허무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여기 저기서 당하는 학대와 병마와 실패. 이것으로 계속 점철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래도 어찌어찌 잘 넘어가더라도 팍삭 늙어버렸을 때 인생은 무엇이 남는가. 아무 것도 없다. 늙어서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라. 우리도 다 그렇게 된다.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다.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들이 갈 길인가? 이렇게 끝나고 말 것인가? 인류 조상의 범죄 때문에 우리의 삶 전체가 이렇게 되고 마는가? 하나님의 창조는 어그러지고 마는가?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셔야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친 게 아니다. 하나님은 다시 구원의 약속을 주신다. 비록 먼 장래에 될 일이지만 역시 복음의 시작이다.


뱀에게 하신 말씀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십자가 사건을 말하고 있다. 사탄은 그리스도를 못박아 죽인다. 그러나 그를 영원히 죽게 하지 못한다. 사흘 후에 완전한 존재로 다시 사신다. 그리고 사탄은 패배한다.


이 예언은 그 이후 성경이 쓰여지기 이전부터도 택한 족장들을 통해서 이어졌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그의 후손을 통해서 구세주를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선지자들에 의해 구약이 기록되면서 그 약속은 더욱 더 분명해진다. 구약 전체를 흐르는 하나의 주제이다. 구세주가 오시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다. 그는 우리를 구하신다.


어떻게 구하시는가?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어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이다. 그가 모든 저주를 자기 몸에 짊어진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 이상의 저주는 없어진다는 약속이다. 죄로부터 오는 형벌 즉 슬픔과 좌절과 병과 가난과 무의미와 무가치의 값을 그가 치룬다. 그리고 영원한 심판과 죽음. 이 모든 죄의 결과를 그가 다 짊어진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가지신 의와 기쁨과 평안이 믿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약속이다. 구약의 구구절절이 그 약속이다. 신자는 그 기쁨과 평안을 소유해야 한다. 죽은 뒤에 가서 구원이 성취되는가? 구원은 예수를 믿고 영접하는 순간에 시작된다. 지금도 우리는 구원받은 삶을 살고 있다. 그 구원의 경험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한다.


2. 복음으로 은혜와 사도의 직분이 주어졌다


사도는 말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 은혜를 받은 것도 사도의 직분을 받은 것도 모두가 복음 때문이다. 복음이 없다면 은혜도 없다. 또한 사도의 직분도 있을 리가 없다. 복음 때문에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또한 이 소식을 전하게 하려고 사도들이 부름을 받은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같은 일이 예수 당시의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일어나게 되었다.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는 방관자이거나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함께 사역하는 이들이다. 은혜를 받고 전도자의 직분을 받은 것이다.


복음은 의인이나 훌륭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게 아니다. 어떤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모두에게 그냥 주신다. 세상에서 공짜로 받는 것은 별 게 없다. 복음은 그런 게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루신 일들이다. 그 은혜로 인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고 그 약속에 속한 사람들로 부름을 받게 되었다.


구원에는 세 가지 면이 있다. 먼저 죄와 그 형벌로부터 벗어난 "과거적 구원"(눅 7:50)이 있다. 그로 인해 모든 저주는 그치고 말았다. 무엇이건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면 복음을 떠올리라. 그리스도께서 나의 과거를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셨다. 저가 고통 하신 것은 내 형벌을 대신 당하셨다는 증거이다. 복음을 믿으면 저주는 그친다.


다음으로 매일 삶 가운데 죄와 악의 생각에서 벗어나 그 세력을 극복하는 "현재적 구원"(롬 5:10)이 있다. 신자로서 지금 구원의 기쁨을 맛보고 있는가? 평안과 확신과 감사가 있는가? 그렇다면 구원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아무리 천국이 보장되었다고 하더라도 현재 구원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 당장이 중요하다.


그리고 장차 부활의 몸으로 모든 죄를 완전히 벗어나는 "미래적 구원"(고전 3:15, 5:5)이 있다. 어떤 상태인지 알려면 성경을 통해 부활의 그리스도를 보면 된다. 그의 상태가 곧 우리가 앞으로 누릴 구원의 모습이다. 모든 억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고 놀라운 능력으로 하나님처럼 빛나게 된다. 복음은 그 상태를 약속한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과거의 모든 죄에서 해방된 느낌을 누려야 한다. 그리고 현재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을 믿는다. 그가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심으로 현재 확실하게 그리스도의 도움이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차츰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해 나감으로 매일 매일 성화의 단계로 나간다. 그리하여 영원한 부활의 단계에까지 성장한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도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러한 삶을 선물로 주신다. 이것이 바로 은혜이다. 그리고 이 일을 스스로 실천하고 전파하도록 우리를 부르셨다. 놀랍지 않은가. 어디 사도가 따로 있고 특별한 종이 따로 있는가! 우리가 바로 그 영광스런 존재이다.


3. 복음은 믿는 이에게 능력이다


앞에서 과거적 구원, 현재적 구원, 미래적 구원을 말했다. 이 모든 것이 결국에는 현재에 집중되어 있다. 복음은 현재의 깨달음을 통해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한다. 현재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고 있으면 그것이 미래로 이어진다. 과거의 모든 저주와 형벌로부터 자유했음도 알게 된다. 현재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경험하게 된다.


16절에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하였다. 17절에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하고 다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한다. 이 두 말씀을 통해 루터는 당시의 교황과 황제와 전세계 반대파들과 싸웠다. 그럴 힘과 상황을 공급받은 것이다.


복음을 통해서 들려지는 내용을 믿는 것이 곧 믿음이다. 다시 말해서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의가 우리 보통 사람에게도 주어졌다고 선포한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서 그 힘을 공급하신다고 한다. 신앙은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들어드리는 게 아니다. 하나님 도움과 하나님 힘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믿으라. 늘 자신에게 들려주라. 처음에는 잘 믿어지지 않아도 반복해서 들려주라. 왜 얼른 믿어지지 않는? 세상사고와 실패와 좌절에 쩔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운동해서 힘이 생기지 않는다. 굶던 사람이 한 두 번 음식을 먹어 건강해지지 않는다. 한 두 번 말씀 들어서 금새 사고가 바뀌지 않는다.


반복하라. 쉬지 말고 영혼에 양식으로 먹이라. 거부하는 마음은 사탄의 속삭임이다. 현재 복음의 내용을 믿고 그것으로 무장을 하고 있는가. 현재 그리스도가 저주를 가져갔음을 믿고 그로부터 자유를 느끼고 있는가? 그의 임재를 알고 자신이 그의 권세로 무장되었음을 믿는가? 그렇다면 그 구원의 권능은 계속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한 가지 일만 확실하게 확인하자. 지금 나는 그리스도의 죄용서함을 믿는가? 내 공로가 아무 것도 없어도 그렇게 되었는가? 나의 모든 죄가 그치고 그 형벌이 다시는 없음을 믿는가?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고 하나님 앞에 당당한 마음이 되어 있는가? 그 하나님의 도움을 믿기에 당당하게 모든 문제를 향해 설 수 있는가?


현재 이 시간에 그렇다면 그것을 계속적으로 연장함으로 영원까지 이르는 것이다. 복음의 내용을 늘 확실하게 잡지 못하기에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늘 마음으로 되새겨서 영혼의 양식으로 삼으라. 복음은 이름만 복음이 아니다. 듣는 즉시 효과를 보는 신기한 말씀이다. 거저 주지만 효과는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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