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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근본원리 (롬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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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종교개혁의 표어가 되는 구절이올시다. 오늘 十월 마지막 주일은 흔히 종교개혁 기념주일로 지킵니다. 그것은 주후 一五一七년 十월 三十一일에 비로소 유명한 十六세기 종교 개혁이 시작하게 된 까닭입니다. 물론 마틴 루터 이전에도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다가 희생을 당한 사람이 많지마는, 종교 개혁은 실상 마틴 루터로부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된 까닭으로 흔히 종교 개혁을 생각할 때는 우리가 먼저 그를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 마틴 루터는 독일의 자그마한 어떤 지방, 가난한 광부, 혹 어떤 때는 농사를 짓는 그런 가정에서 난 사람이올시다. 부모가 빈한했지마는 신앙은 독실해서 어렸을 적부터 마틴 루터에게 그 당시에 행하던 신앙 생활을 하는 법대로, 마리아도 열심히 숭배하고, 여러 성자도 열심히 숭배하는 법을 어렸을 적부터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 대학에 가서 다닐 때에 점점 나이고 많아짐에 따라서 인생 문제에 대한 깊은 사색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자기가 한 번 중상을 당해서 거의 죽을 번한 경험도 있었고, 중병을 입어서 심히 고통을 받은 경험도 있었고, 또는 자기 가까운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그와 같은 고통을 통해서 더욱 인생 문제에 대한 번민(煩悶)을 대학 시절에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큰 폭풍우가 있는 어느 날, 어떤 곳을 지나 가다가 바로 자기 옆에서 낙뢰가 되는 그러한 위험한 일을 당하게 될 때에, 이 청년은 큰 공포에 싸여서 그 자리에 꿇어앉아서『성 안나 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제가 수도사가 되겠습니다.』이런 부르짖음을 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광업을 하던 사람들은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가 된다고 하는 성 안나를 수호 성자로 섬기던 때이어서 루터도 성 안나를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청년으로서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그 곳에 들어가서도 자그마한 독방 생활을 하면서 적은 문 하나 밖에 없는데 그 문을 열어 놓으면 공동묘지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기도를 하며, 묵상을 하며, 공부를 하며, 연구를 하며, 어떻든지 자기의 구원을 완성하길 애썼습니다.


  그렇지마는 더욱 자기의 고통은 점점 더해졌습니다. 그 까닭은 성경을 연구해 보매 성경의 교훈과 그 당시 교회에서 가르치던 교훈과 행하는 일에 많은 차이를 발견하게 되어서, 거기에 대한 고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둘째로는, 자기가 그 때에 가르치는 대로 어떻든지 착한 일을 하고 어떻든지 공덕을 많이 쌓아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고 죄 사함을 받으려고 아무리 힘을 쓰고 정성껏 모든 것을 다 한다고 하지마는 도저히 양심의 평안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세수 물을 떠다 놓고 손을 씻으면서『아무리 씻고 또 씻어도 내 몸은 그냥 더러우니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스스로 탄식하는 말까지 나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성경을 더 연구하며 또한 성경을 그 때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시편을 가르치고, 갈라디아를 가르치고, 로마서를 가르치게 되어서 이런 책들을 연구하는 가운데 그 때 교회에서 가르치던 교훈이 근본적으로 성경에 가르치는 교훈에서 떠났다고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람이 율법을 행해서, 선을 행해서, 누가 덕을 쌓아서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 진리를 분명히 깨닫는 동시에 지금 읽은 이 말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써 하나님에게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께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진리를 분명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자기가 어떤 행실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으려고 힘쓰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의인을 믿음으로 산다고 하였는데 오직 이 믿음으로써 십자가의 공로 위에 온전히 자기 몸을 바치게 된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고 온전히 믿고 십자가를 믿는 가운데서 비로소 자기의 죄가 십자가의 공로로 다 용서된 것을 깨닫게 되고, 그 다음부터 자기가 구원받은 것을 확실히 알게 되고, 따라서 그 다음부터 구원의 참된 기쁨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서도 이 성경을 대학에서도 가르치고 자기가 주일마다 설교하는 교회에서도 이 진리를 가르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로마에서는 그 때에 레오 十세라고 하는 교황이 있었는데 그 전 교황 때에 굉장한 예배당을 짓게 되니까 재정이 대단히 궁핍해서 그 때에 흔히 하는 법대로 속죄 표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에도 테텔(Tetel)이라는 교황 사절을 보내서 속죄 표를 사방에서 팔았습니다.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이 속죄 표를 샀습니다.


  루터는 자기가 깨달은 그 진리대로 설교도 하고 가르치던 그 때인지라 이런 광경을 볼 때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一五一七년 十월 三十一일, 자기가 설교하는 켓슬 교회 문밖에, 속죄 표를 파는 것이 그릇된 것이며, 참으로 죄 사함을 얻는 길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고 하는 그런 조항에 대한 九十五개조를 내걸고, 누구든지 내가 주장하는 여기에 대하여 반대하는 의견을 가졌으면 내가 공중으로 변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九十五개조가 바람에 날리듯 유럽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사방에서 이 루터의 九十五개조를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고 종교 개혁의 三대 원리를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율법을 행함으로나, 선행(善行)함으로나, 공덕(功德)에 의지해서 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義)를 믿음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이 원리입니다.


  둘째로는, 당시 교회의 모든 형편을 보면 성경을 권위로 삼기보다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여러 가지 교회의 전통에 더 치중해서, 성경의 진리가 가리어지니까 이 앞으로는 성경만을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고 교회에 내려오는 전통은 성경에 의지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는 원리를 주장했습니다.


  셋째로는, 그 당시에 보니까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성경에 보면 중보는 오직 예수 님 한 분밖에 없는데)반드시 신부를 통해서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이런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없는 진리이니까, 누구든지 제사장의 자격이 있어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그리스도만을 중보로 삼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서 기도도 하고 하나님께 직접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다시 말하면, 신앙 생활에 있어서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 三대 원리가 요원의 불과 같이 전 유럽에 퍼지게 되어서 사방에서 다른 종교개혁도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가령 스위스 같은 데서 쥬리히 라고 하는 곳에서 쯔윙글리 같은 사람이 종교개혁의 봉화를 들게 되었고, 프랑스에서는 존 칼빈(John Calvin), 그 후에 제네바로 갔지마는, 칼빈 같은 사람이 역시 종교개혁의 불을 들게 되었고, 스코트란드 같은 데서는 존 녹스 같은 사람이 역시 이에 호응하게 되어 종교 개혁의 불길이 온 유럽 천지에 차게 되었습니다. 교황은 물론 루터를 파면하고 여러 가지로 탄압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무력으로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구교를 치중해 믿고 교황을 후원하려는 이런 나라를 동원해서 신교 믿는 사람들을 무력으로 탄압하기 시작하니까 결국은 신교도들도 역시 무력으로 항쟁하기 시작해서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十六세기 중엽부터 十七세기까지 근 한 세기 동안 종교 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비참(悲慘) 가열한 三十년 전쟁도 그 때 있은 것입니다. 그러다가 一六四八년 웨스트팔리아(Westphalia) 협약에 의지해서야 비로소 구교 나라에서 신교 믿는 사람에게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신교의 자유가 많은 희생을 통해서 획득하게 된 것을 우리가 잊지 아니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신교와 구교의 차이가 대체 무엇이냐? 구교 혹은 천주교 혹은 카톨릭교와 우리 신교, 장로교니 감리교니 하는, 이 신교의 차이가 대체 무엇이냐? 대체로 구교는 중세 시대 기독교와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가령 이렇게 몇 가지로 대조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 신앙에 대해서 지금도 말했지마는 우리 신교에서는 성경만을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습니다. 구교에서는 성경 뿐 아니고 교회의 전통을 지금까지도 중요시해서 전통  대로하려고 합니다. 우리 신교에서는 성경만이 신앙과 행위의 유일무일 한, 참으로 무오(無誤)한 법칙인줄 믿고 그렇게 행하려고 합니다.


  구교에서는 성경 이외에 교회 전통 뿐 아니라 특별히 교황이 있어서 교황 무오설(敎皇無誤說)을 믿습니다. 교황이 신앙 문제나 행위 문제에 대해서 확정하는 것은 그릇될 수 없다고 하는, 그가 그리스도의 대리임을 믿습니다. 우리 신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만 믿습니다. 그들은 성모 마리아를 믿고 또 여러 성자도 많이 믿는 모양입니다.


  우리 신교에서는 죽어서 천당에 가지 아니하면 지옥에 가는 것이라는 성경에 있는 그대로 믿습니다. 구교에서는 성경에도 없는 연옥이라고 하는 딴 곳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 밖에도 많지만 이런 몇 가지가 특별히 다른 것입니다.


  예배는 어떠냐? 우리 신교에서는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단순히 성경의 교훈과 같이 신령과 진리로써 예배합니다. 구교 예배는 의식을 존중히 해서 그 신부나 감독의 의복이 화려하고 찬란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예배당에 들어가 보면 성모 마리아와 여러 성자들의 성상들과 그리스도의 성상들과 이런 우상과 비슷한 것이 많이 나열되었고, 많은 성도들이 그 성상 앞에 가서 기도하는 것을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신교에서는 예배 순서가 간단합니다. 찬송과 기도와 설교, 그저 이 몇 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밖에 미사 제를 드립니다. 미사 제라는 것이 성경에는 없습니다. 어디서 왔는고 하니, 예수 님께서 성찬 예식을 행하실 때에 말씀하시기를『이것은 내 몸이니, 이것은 내 피니…』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이 떡과 포도즙이 사실상 예수 님 피로 변해서, 그러니까 예수 님 몸과 피를 다시 제사로 하나님께 드린다는 이런 전통이 생겼습니다.


  이 교훈은 성경의 교훈과 정반대 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 님께서 만민의 죄를 대속(代贖)하기 위해 갈보리 산상의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제사를 지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이것과 반대로 합니다. 신부가 그 십자가의 제사를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반복해서 미사 제를 지냅니다. 우리 신약에는 전혀 없는 풍속입니다. 성례(聖禮)하면 선교에서는 단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즉 세례와, 성찬, 신약에 있는 대로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구교에 보면 거기에 다섯 가지 더 있습니다. 가령 견신례(堅信禮)라 하여서 세례 받은 다음에는 감독이 안수하는 풍속이 있고, 종유례(終油禮)라 하여서 사람이 죽기 전에 기름 바르는 풍속이 있고, 참회례(懺悔禮)라 해서 죄지은 다음에 신부에게 가서 자복(自服)하고 용서받는 그런 예사 있고, 결혼식도 성례로 간주하고 또 무슨 임직식(任職式)도 성례로 간주해서 성례를 일곱 가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정치는 어떠하냐? 우리가 신약을 보면 초대 교회에서 집사를 택할 때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일곱 집사를 투표해서 선정했다고 그랬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천주 교회서는 그 풍속이 다 없어진지 오랬습니다. 구교는 교황이 있어서 교황이 그 아래 기관을 임명하고, 대 감독과 감독을 임명하고, 감독이 각 교회 신부를 임명하는 교황 전제 정치입니다.


  지금까지도 천주교에 모호한 점이 있습니다. 천주교회가 사실 국가냐? 혹은 교회냐? 로마에 가 보면 교황과 성 베드로 예배당이 있는 그 자그마한 구역을 바티칸(Vatican)이라고 해요. 교황은 전 세계에 있는 로마 교회의 주권자인 동시에 바티칸 나라의 왕입니다.


  그러면 이 로마 교회에 입교한 사람들이 어떠한 의미에서 로마 교황에게 충성을 하느냐? 이것을 나라로 간주하는 나라에는 교황청에서 사자를 보냅니다. 우리 나라에도 사실 교황청의 사자가 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그곳을 나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황청의 사자를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정말 나라이냐, 이것이 교회이냐 에는 모호한 점이 지금까지도 있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이 된지 벌써 四백여 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된 것을 지금은 대강 엿볼 수가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영국, 독일 그리고 북부 유럽은 대체로 다 신교입니다. 남부 유럽 국인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지방은 대체로 구교입니다. 또 남북 아메리카는 보면 북 아메리카인 미국과 가나다는 대체로 신교입니다. 남아메리카는 대체로 구교입니다.


  이 두 지방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문화적인 면에서, 구교를 주로 믿는 나라가 더 앞섰느냐? 신교를 믿는 나라가 더 앞섰느냐? 더구나 민주주의적 견지에서 보아, 민주 정치가 주로 구교를 믿는 나라에서 더 발전되었느냐, 신교를 믿는 나라에서 더 발전되었느냐?, 그것은 여러분의 판단에 맡깁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한 가지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은 신교가 많고 구교가 적은 나라에는 신교 자유 문제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자유를 줍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구교가 많고 신교가 적은 나라 가운데는 구교도가 신교를 많이 핍박합니다. 콜롬비아 같은 나라에서는 지금도 많은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도 작년에 신교 신학교 하나 있던 것마저 강제로 폐문(閉門)시키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이북에서 오신 분이 많은데 압록강이 본래 백두산 꼭대기 맑고 맑은 천지에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물이 점점 흘러 내려와 여러 곳을 지나서 신의주쯤 와서 보면 물이 대단히 흐립니다. 왜 흐립니까? 오래 흘려 내려오는 동안에 거기에 섞이지 않아야 할 것이 많이 섞였습니다. 기독교가 맨 처음에 갈보리 산상과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맑은 물이 흘러 내려오는 동안, 여러 역사적 과정을 지나오는 가운데, 로마 헬라 시대를 지내오고 암흑중세 시대를 지내오는 중, 여러 가지 섞이지 않아야 좋을 것이 섞인 것입니다. 우리 신교는 본래 근원지인 성경에 돌아가서 맑은 물을 마시는 이러할 신앙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기도하십시다.        




  (1958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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