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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성도 (롬1:8-17)

본문

로마서 1장 8절서 17절까지 있는 말씀 가지고 '올바른 성도'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올바르다 하는 말은 오감의 올들이 바르게 조직되어야 옷감이 제대로 짜지듯이 모든 일에서 옳고 바른 사람이란 말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에나 옳고, 또 언제나 옳고, 누구에게나 옳게 살아가는 성도를 올바른 성도라 하겠습니다. 또 사람은 바르게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얘기를 들을 적에 바로 들어야 하고 생각을 해도 바로, 무슨 일을 보아도 바로 보아야 합니다. 말을 해도 바로 하고, 생활을 해도 바로 하고, 일을 해도 바로 해야 됩니다. 비뚤어진 사람들은 꼭 비뚤어지게 생각을 합니다. 설교를 들어도 비뚤어지게 듣고, 말을 해도 꼭 비비꼬아서 말하고, 일을 시켜보면 비뚤어지게 해서 자꾸 문제가 됩니다. 문제를 일으켜 놓고 쾌감을 느낍니다.


어떤 마음과 어떤 자세로 어떻게 생활해야 올바른 성도가 되는지 함께 알아 봅시다.


I. 올바른 생활(8-10절)


1. 감사의 생활(8절)


바울 사도는 로마 교인들에게, 사장 첫째로 하고 싶은 일은 감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첫째는 내가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의 내용은 뭐냐하면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 때문에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나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 때문에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 헌금 드리는 내용을 보면 대부분이 나 때문에 감사합니다. 나에게 건강 주어서, 나에게 이러이러한 좋은 조건 주어서 감사합니다 하면서도, 남 때문에, 다른 사람 때문에 감사하는 일은 극히 적습니다. 바울 사도는 지금 로마 교인들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쓴 다른 서신들은, 자기가 직접 세운 교회에 편지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가 잘되고 그 교인들 소문이 좋게 들려오니 감사했습니다.


로마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니요 아직 가 본 일이 없습니다. 자기의 전도를 받아서 예수 믿은 사람이 그 가운데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교인들이 그렇게 잘 믿는다고 소문이 났는데 내가 전도해서 세운 교회보다 오히려 더 잘 믿는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바울 사도도 인간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는 자기가 세운 교회가 더 잘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도 오히려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교회가, 상관없는 교인이 더 잘 믿는 다는 얘기를 듣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나 중심의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감사입니다. 감사의 조건이 주어져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의 조건을 만들어 가지고 감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집안에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을 내가 모르고 있다가, 찾아서 감사하는 것도 귀하지만 감사의 조건을 만들어 가지고 감사하는 것이 더 귀합니다. 내가 어느 수필집을 읽다가 이런 내용을 봤습니다. 오래 전에 미국에서, 그때만 해도 차가 많지 않아 주로 버스를 타고 다닐 때에, 부흥 강사 목사님이 머나먼 교회에 버스를 타고 부흥회를 인도하러 갑니다. 차에 타고 보니 혼잡했으나 자리하나를 얻어 앉았습니다. 얼마쯤 가다 정거장에서 사람들이 타는데 흑인여자가 탑니다. 여자가 어떻게나 뚱뚱한지, 목욕은 일년 내내 핸 본 것 같지도 않아서 냄새는 나고 애는 다섯씩이나 데리고- 하나는 업고 하나는 안고 셋은 걸리고- 밀고 들어오는데 어떻게 불쾌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옆에 와서는 예의가 있나, 교양이 있나 마냥 떠들어댑니다. 애들이 쥐어박아서 죽는다고 울기도 합니다. 짜증스럽고 원망스러워 지려고 할 때 성경을 생각하니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교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도저히 감사할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속이 답답해서 내가 좀 감사할 일이 없나 하고 눈을 감고 한참 생각하니 감사할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탁치고 감사했는데 뭐라고 감사했겠습니까? 목사님은 그 여자가 자기 아내 안된 것을 감사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감사의 조건을 만들어 감사 한 것 아닙니까? 제가 저의 집사람보고 그런 얘기를 했더니, 나에 대해서는 지금 당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러기에, 내가 당신 앞에서 안 그러지만 당신 없을 때는 기도할 때에 이 여자 제 아내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한다고 했더니 아주 좋아 하더군요. 우리는 감사의 조건을 찾아서 감사하고 감사의 조건을 만들어서 감사해야 됩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 교회에 감사 할 이유가 하나도 없지만 만들어서 감사했습니다. 이 감사하는 생활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첫째로 해야할 올바른 생활인 줄 압니다.


2. 섬김의 생활(9상반절)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이 섬긴다는 말은 헬라말로는 '라트레이아'라고 하는데 섬긴다는 말로 번역이 되고 예배란 말로도 번역이 됩니다. 예를 들면 로마서 12장 1절에 '너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것은 너희의 마땅히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는 말씀에서의 예배라고 하는 말에는 '라트레이아'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섬긴다, 로마서 12장 1절에는 예배한다 그렇게 번역이 된 것입니다. 이 말을 종합해서 해석하면 예배가 하나님 섬기는 봉사 생활 중에 가장 기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배 없는 봉사는 봉사가 아니라는 그런 뜻입니다. 모든 봉사를 하려면 예배부터 시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봉사 아무리 할지라도 주일 날 결석하고 낚시질하러 가면서 다른 봉사 많이 했다고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제일 기뻐하는 봉사는 주일날 나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 봉사는 여기서부터 출발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봉사가 시작이 되고, 여기에서 봉사는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 예배의 생활이란 말은 봉사하는 생활이다 이렇게 바꾸어도 됩니다. 예배하는 생활, 봉사하는 생활, 이것이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올바른 생활임을 마음 속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3. 기도의 생활(9하반절-10절)


바울 사도는 항상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로마교인들을 위해서 빼놓지 않고 하는데, 직접 로마에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서 전도하고 싶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항상 기도하였고 항상 기도한다 할 때 우리 생각에는 어떻게 항상 기도하느냐 그것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뜻일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 사람들 즉 유대 사람들은 항상 기도하라고 할 때 24시간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 하는 그런 듯으로 쓴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우리 한국 사람이 썼다면 한국 사람의 사고 방식대로 해석을 해도 되지만 히브리 사람들 즉 유대 사람들이 썼기 때문에 그들의 사고 방식으로 해석을 해야 됩니다. 유대인들은 '항상 기도하라, 항상 기도한다' 할 때에, 이 같은 뜻으로 그 말을 썼습니다. 즉 그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 꼭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합니다. 짧게 기도하느냐, 오래 기도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 마음대로 입니다. 그러나 기도 시간 세 번을 정해 놓은 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똑같습니다. 6시, 9시, 12시입니다. 6시는 우리 시간으로 12시입니다. 그 시간만 되면 만사를 제쳐놓고 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몰라도 적어도 당시만은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란 말은 정해 놓은 그 세 시간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 놓고 기도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다니엘만 한 것은 아닙니다. 유대 사람이면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항상 기도하기를 쉬지 아니했습니다. 기도를 쉬는 것은 죄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것은 올바른 생활입니다.


매일 새벽예배 참여하여 기도하고, 아니면 가족들이 학교로 일터로 나간 후, 시간에 구애받음 없이 기도하고 하루의 일과를 다 마친후 감사 기도 드린다면 하나님이 무척 기뻐하실 것입니다.


II. 올바른 정신(11-13절)


1.나눔의 정신(11절)


사람에게는 행동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정신이 더욱 중요합니다. 바른 정신이면 바른 행동이 안 오고, 옳기 못한 정신이면 그릇된 행동을 합니다. 먼저 넉넉함으로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나누어주려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은사를 나누어주기를 배급 주듯 할 수 있을까요? 은사에는 방언의 은사, 예언의 은사, 통변의 은사, 치유의 은사, 말씀의 은사... 많습니다. 그것을 나누어주겠다니 바울 사도가 배급 줍니까? 이것을 나누어주어서 너희 믿음을 견고하게 하겠다는 말은 그 말 같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가 받은 성령의 은사 체험은 너무너무 많습니다. 그것을 로마에 한 번 가서 로마 교회 앞에 간증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은혜 받았다. 그러니 너희도 어렵고 괴로울 적에 이렇게 해서 은혜 받으면 된다.' 이렇게 간증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간증을 들은 사람이 '아니 바울이 믿는 하나님이 내가 믿는 하나님 아닌가, 바울도 나와 똑 같은 사람인데 나라고 은사 못 받으라는 법이 어디 있나' 하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믿음에 북돋음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자기가 그것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것, 내가 가진 것으로 나누어 도와 주려 하는 정신이 중요합니다. 믿음을 북돋워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 위안의 정신(12절)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바로 하여, 바람직한 믿음 생활하도록 키워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믿는 우리 성도들은 세상 돌아가는 소리보다 믿음에 대한 소리 듣기를 좋아합니다.


교회라고 하는 곳은 믿음의 소리를 들으려 나오는 곳이요 믿음의 얘기가 통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하는 말이 그것입니다. 내가 너희 믿음 소리 듣고 싶고 나도 너희에게 믿음 소리 들려주어서, 서로서로 위로를 얻고 힘을 얻자고 하는 뜻입니다. 믿음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의 얘기를 통해서 서로 위로를 주고받는 자세, 믿음으로 위로를 주려고 하는 정신, 남에게 위안을 주고 용기를 주려고 하는 정신,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가지고 살아야 할 정신적인 자세인 줄로 압니다.


3. 결실의 정신(13절)


바울 사도는 로마에 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가고 싶어했으나 길이 막혀 못간 것이 안타까이 생각하며 이야기합니다. 로마에 가서 고린도에서처럼, 아덴에서처럼, 데살로니가에서처럼, 빌립보에서처럼, 이방에서 전도하여 많은 결신자를 얻은 것처럼 전도해서 열매를 얻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러번 하려 했으나 못한 것입니다. 할 수 있는데 안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하려고 하는 자세, 열매를 얻으려고 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어느 수필집을 읽다가 이런 내용을 봤습니다. 내용이 뭐냐 하면 예수 믿든, 안 믿든 사람으로 죄 짓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답니다. 첫째는 모르면서 배우지 않는 것, 아니 제 위신 때문에 모르면서도 아는 것처럼 하고 안 배운다는 것입니다. 교회 10년 다녔다면 1년 만에 세례 받고 3년 지나면 집사가 되어서 7년 동안 집사 노릇했는데 신구약 성경을 한 번도 안 읽어서 유다서가 창세기 다음에 있는지 마태복음 전에 있는지 모르면서도 다 아는 것처럼 성경 공부 안 합니다. 죄 중에 모르면서도 배우지 않는 것이 큰 죄입니다. 두 번째는 알면서 가르치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합니다. 가만히 보면 예수 믿는 저 사람 저런 소리하면 안 될 텐데, 저런 짓 하면 안 될 텐데라고 하면서도 가르쳐 주고 깨우쳐 주려니 인심을 잃겠습니다. 그러니 알면서도 안 가르쳐 줍니다. 그것이 분명히 죄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것 죄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물에 빠진 사람을 가서 건져줄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것은 죄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두고 얘기하면 무슨 소리인지 아십니까? 봉사할 수 있는데도 안하고, 헌금할 수 있는데도 안 하고, 전도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것 죄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할 수 없어서 로마에 가지 못했지 할 수 있는 것을 안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할 수 있다면 로마에 가서 다른 이방인에게 전도하여 열매를 얻은 것처럼 열매 맺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하는 사람,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올바른 사람이요, 할 수 있는 것 하려고 하는 정신이 바로 올바른 정신으로 우리가 가지고 살아야 할 자세라는 말입니다. 올바른 정신은 나누어주려고 하고, 위로를 베풀려고 하고, 무엇이든 하려고 하는 정신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III. 올바른 자세(14-17절)


1. 빚진 자의 자세(14-15절)


바울 사도는 무슨 자세를 가지고 살았는가 하면 '나는 누구에게나 빚졌다'는 자세였습니다. 목사님 나는 누구에게나 빚진 일이 없는데 왜 빚진 자세로 살아야 됩니까? 할 때 그것은 몰라서 그렇습니다. 내가 장가가서 아들딸 낳아 키워 보기 전에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엄청난 빚진 것을 사실상 깨닫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당연히 아버지 어머니는 나를 위해서 희생해야만 하는 존재, 나를 사랑해 주어야 하는 존재, 그렇게 밖에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장가가고 아들딸 낳고 키워 놓은 다음에야 내 어머니 아버지가 이렇게 키웠겠구나 하는 것을 생각 해 보고, 내가 죽을 때까지 못 다 갚을 은혜를, 못 다 갚을 사랑의 빚을 지고, 내가 되었구나 깨달았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얼마나 좋고 그리워지는지 모릅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그 평생 못 다 갚을 은혜를 지고 여러분이 된 것입니다. 부모님을 잘 모셔야 합니다. 부모님께 빚 갚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 혼자 훌륭해서는 내 믿음 못 큽니다. 내 믿음 키워 주신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혼자 잘나고 훌륭해서 믿은 다 컸습니까? 우리 교회 목사님들이 여러분들의 믿음 키워 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빚을 갚으십시오. 학교 가서 등록금 내고 내가 글 배웠다 해서 장사하는 식으로 선생님을 대하렵니까? 등록금으로 해결 못하는, 선생님한테서 받은 은혜가 있지 않습니까? 평생 잊지 못하는 은사, 그 선생님께 내가 배워서 내가 사람되었는데, 빚지고 내가 나 된 것 아닙니까! 내 아버지가 돈 벌어 세워 놓은 학교에 다닌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천만 오천만 국민이 세금 내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나라와 민족 앞에 엄청난 빚을 졌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나라에 충성해야 합니다. 빚 갚아야 합니다. 한편 하나님께 엄청난 빚을 지고 구원받은 우리들입니다. 그러니까 바울 사도는 누구를 보든지 나는 빚진 자라는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출세했고, 아무리 배운 것 있다고, 번 것이 있다고, 뽐내고 자랑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볼 때마다 빚진 자세, 그 빚을 갚으려고 애 쓰는 자세, 이 자세가 중요합니다. 빚을 많이 지면 무겁고, 갚으면 마음이 시원하면서도 자랑은 못하고, 갚으면서도 감사하고...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빚진 자세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나 이웃 앞에 이런 빚진 사세를 가지고 살아 갈 때 참 훌륭한 크리스챤이 되는 것입니다.


2. 영광의 자세(16절)


바울 사도는 이 복음, 복된 소식, 예수를 믿고 전하는, 예수의 일꾼 된 것을 절대 부끄러워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것, 특히 안 믿는 집안에서 믿고 나올 때에는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것을 절대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예수 믿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했고, 예수 믿고 직분 맡아 주의 일꾼 되는 것을 더 없는 영광으로, 세상에 다른 직책과 바꿀 수 없는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백화점 왕이라는 와나메이커는 대통령이 불러서 장관을 하라고 할 때 뭐라고 그랬습니까? 주일날이면 주일 학교 교사를 꼭 해야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대통령이 장관 노릇하다가도 주일날만 되면 만사 제쳐놓고 주일학교 교사하라고 하므로 그렇다면 장관을 하겠습니다하고 나가 장관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주일 학교 선생이 너무 영광스러워서 장관자리와 바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난 예수 그리스도 믿고, 예수 그리스도 만났고 예수 그리스도 일꾼 되어, 이 복음 전하는 것이 영광이지, 부끄러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주님의 일꾼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자세, 성도가 가지는 올바른 자세입니다


3, 계승의 자세(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른다는 말씀은 믿음의 계승을 의미합니다. 어제에서 오늘로, 금년에서 내년으로 내 믿음이 계승이 되는가 하면 내 아들딸들에게 믿음이 자꾸 계승되어 나갑니다. 내가 큰 기업체를 만들어 놓고 아들에게 유산으로 주어서 계승시키는 것에 하나님은 관심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랑할 가치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었던 예수, 내가 믿는 믿음을 아들딸들에게 유산으로 주는 것에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십니다. 또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올바른 성도는 올바른 생활을 합니다. 올바른 생활은 감사의 생활이요, 예배의 생활이요,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올바른 성도는 올바른 정신을 가지는데 나눔의 정신이요, 남에게 위로를 베푸는 정신이요, 항상 할 수 있는 일은 피하지 않고 해서 결심을 보려고 하는 결실의 정신입니다. 올바른 성도는 올바른 자세를 가지는데 빚진 자의 자세이고, 예수 믿고 일꾼 된 것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영광의 자세이고, 믿음을 이어 주는 계승의 자세를 가지고 산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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