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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19:1-14)

본문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열왕기상 19 : 1 - 14





        할렐루야!!

        오늘 저녁에는 항상 은혜주시는 하나님이 풍성한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 멘!>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의 실상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엘리야! 하면 「불의사자」라고 알려졌고

        ① 갈멜산상에서 그 무시무시한 바알 신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사제들 850명과 그 배후에는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를 가진 아합왕과 이세벨 왕후를 상대로 기도로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여 통쾌한 승리를 한 사람이요

② 3년 반이나 비가 안 오던 때에 기도해서 비가 내리게 한 능력의 선지자요

③ 죽음을 보지 않고 불 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선지자임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엘리야가 오늘 읽은 19장의 말씀을 보면 그렇게 약해진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이럴 수가 있을까하여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 내용인즉

       ① 앞 18장에서 갈멜산에서 있었던 일과 바알과 아세라 무당 850명을 기손 강가에 가서 죽인 모든 내용을 아합왕이 이세벨 왕후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② 보고를 들은 이세벨 왕후가 사람을 보내어 엘리야에게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을 하였습니다.

       ③ 엘리야가 도망을 가서 브엘세바 광야에 이르러 사환을 남겨두고 자기는 하룻길을 더 가서 로뎀나무 아래 누워 하나님께 죽여주기를 구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하고 처량한 모습입니까?




        그렇게도 능력 많던 엘리야가 이렇게 하루아침에 곤두박질 쳐서 능력이 떨어져 낙심하고 도망을 가야 했습니까? 그것은 야고보서 5:17절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위대한 신앙인 이라고 해서 반드시 강한 것만은 아닙니다. 신앙은 오직 하나님께 믿고 의지할 때만 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도 민수기11:11-14절에 보면 백성들이 하도 원망을 하니까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하며 믿음 약한 탄식을 한 적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였고 또 십자가상에서도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며 외쳐 부르짖으셨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선지자의 길이 너무 힘에 겨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여호와여 이제 족하오니 나의 생명을 취하소서” 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깊이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왜 엘리야를 이 광야로 인도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빈들입니다. 이글대는 태양과 가도 가도 끝없는 모래벌판뿐입니다. 완전히 소망이 없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새로운 힘과 소망을 주셨던 것입니다.

        ① 하나님은 엘리야가 지금까지 행한 모든 기사와 능력이 그 자신의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임을 깨닫게 해 주셨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② 하나님은 죽기를 구하다가 지쳐 쓰러진 그에게 두 번이나 일깨워서 떡과 물을 먹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나간 3년 반 동안의 기근 시에도 그릿 시냇가에 숨기시고 까마귀를 통하여 떡과 고기를 먹여주셨는데 이번에도 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직접 그를 깨워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주어 먹여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우둔한 기도를 들어 주신 것이 아니라 그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늘을 주어 뜨거운 햇볕을 가려 주던 박 넝쿨이 말랐다고 원망하며 죽여주기를 구하던 요나도 하나님은 살리셔서 하나님의 사명을 주어 쓰셨습니다. 엘리야는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오늘까지 여러분을 살려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일이 있기에 살려주시는 것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 멘!>

        ③ 엘리야는 그 후에 하나님의 지시하시는 대로 나머지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였을 때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할 수 있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④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엘리야를 40주 40야를 주야로 쉬지 않고 걸어서 호렙산으로 인도하였습니다. 호렙산은 일찍이 모세가 떨기나무 불꽃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산입니다. 또 모세를 통하여 계명을 주신 곳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이곳 호렙산에서 신앙의 재무장을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호렙산으로 온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물으셨습니다.

       본문 9절 말씀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오늘은 이 여호와 하나님의 질문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① “여기” 라는 그 곳이 어디를 가르치는 곳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 라고 하는 곳은 현재 엘리야가 서있는 그 장소가 될 수도 있고 우리의 신앙의 위치가 있는 곳을 말하기도 합니다.

        (삼상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하나님은 지금 엘리야에게 “네가 이 호렙산에 왜 와 있느냐? 너의 신앙상태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하는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② “어찌하여” 라는 말은 “왜” 라는 말의 준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엘리야에게 그 이유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네 믿음이 왜 이리도 약해졌느냐? 왜 낙심하였느냐? 왜 이렇게 믿음이 떨어졌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2.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 고 물으십니다.




        엘리야에게 하신 질문을 오늘의 우리들에게 적용시켜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믿음이 신앙이 어디에 있는가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 부르시는 질문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창22:1절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46:2절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출3:4절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오늘의 우리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모세와 같이, 사무엘과 같이, 하나님이 부르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창3:9절에 보면 아담은 하나님이 아담아! 아담아! 하고 부르실 때 대답하지 못하고 숨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부르실 때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내가 누구를 보낼꼬?” 하고 물으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들은 이 시간 사무엘과 같이 이사야와 같이 대답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3. 다음으로 생각할 문제는 “어찌하여”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물으시기를 “네가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이 말은 온 이유를 묻는 뜻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와서는 안 될 곳에 왔고,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으니 빨리 그 자리를 떠나라고 하는 뜻도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 네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창12:1) 고 말씀하셨고, 창19:17절에는 롯에게 “빨리 도망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왜 믿습니까?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여기 교회에 왜 왔습니까?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고 물으신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죽겠다고 하는 것을 깨워서, 먹여서, 기운을 차리게 하여, 40주야를 걸어, 호렙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호렙산이 어떤 산입니까? 모세가 처음 부름 받은 곳이요, 하나님이 율법을 내리신 산이며, 이곳에서 성막을 짓도록 명령을 받은 곳입니다. 모세가 세 번이나 40일간 기도하며 하나님을 만난 곳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이곳으로 인도하시고 다시 한 번 다짐을 하는 질문을 한 것입니다.

        마치 여러분들이 오늘 거룩한 주일을 맞이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의 예배를 드리려고 이 교회에 왔는데 하나님께서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왔느냐?” 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겠습니까?

        마땅히 “주여! 오늘은 거룩한 주의 날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예배를 드리려고 왔나이다. 영광과 찬송과 존귀를 세세 무궁토록 하나님께 돌리나이다” 하고 대답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 멘!>




         그런데 엘리야의 대답은 어떠하였습니까?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고 엉뚱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이 호렙산까지 오게 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이것이 문제입니다. 나밖에 없다고 하는 생각이 큰 장해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우리들에게 큰 이슈(Issue)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는 지치고 곤한 심신 상태에서 죽기를 구하였을 때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를 호렙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심신 상태가 지금 곤고하십니까? 피곤하십니까? 지금 여러분의 신앙상태가 어디에 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치고 피곤한 엘리야에게 힘주고 능력 주셔서 호렙산까지 불러 그를 재무장시켜서 엘리야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계획이 있고 뜻이 계셨기에, 죽여 달라고 할 때 살리셔서 쓰신 것처럼, 여러분의 피곤한 심령과 믿음을 하나님은 오늘 이 시간에 성령으로 재 충전시켜서 이 마지막 시대에 쓰시고자 오늘도 주의 성전으로 인도해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 성령으로 재무장하여 다가오는 더위에도 피곤하지 않고 달려가도 곤비치 않고, 넘어지지 않는 믿음으로 능력 받아서 주님 뜻대로 사는 충성된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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