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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바칠 수 있는 믿음 (마22: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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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바칠 수 있는 믿음(II)/마태복음 22 : 35 - 40



        할렐루야!!


        오늘 저녁에도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이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오늘 저녁 설교는 낮 시간의 연속 설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가 가까워 오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을 비롯하여 사두개인들까지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질문 공세를 퍼붓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번번이 망신만 당하고 물러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하여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대답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중요한 골자는 바로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바로 희생입니다.



        지금 세상은 얼마나 악하여 졌는지 제 속으로 낳은 자기 자식도 학대를 일삼고 심지어는 내다 버리기도 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비정의 부모도 있고 부모가 이혼을 하면 서로가 맡지 않겠다고 하여 결국 고아 아닌 고아로 전락하여 고아원에 맡겨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식들이 부모를 학대하고 모시지 않겠다고 서로 미루다가 결국은 자식들 간에 싸움까지 일어나는 것은 이제 새로운 뉴스거리도 아닙니다. 얼마 전에는 70의 병든 노부부가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고 유서를 써 놓고 목매 자살하는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얼마 전에는 70먹은 할아버지가 병든 아내를 15년간이나 홀로 간병하다가 할머니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니까 아내의 목을 졸라 죽게 하고 자신도 약을 먹고 죽으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도 있었습니다. 더욱 마음 아픈 것은 이 할아버지에게는 자식들이 네 명이나 있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두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말세에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24:12)고 하셨습니다.


         다 같이 찬송가 503장 1절을 부르겠습니다.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냉랭함을 아느냐


        곳곳마다 사랑 없어 탄식소리 뿐일세


        악을 선케 만들고 모든 소망 채우는


        사랑 얻기 위하여 저들 오래 참았네


        사랑 없는 까닭에 사랑 없는 까닭에


        사랑 위해 저희들 오래 참고 있었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는 시몬에게 찾아오셔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것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고 세 번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앞으로 순교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가 죽기까지 나를 따르며 부인하지 않으며 사랑할 수 있느냐?” 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하나님 사랑인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까지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를 하였고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목이 잘려 순교를 하였습니다.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목숨까지도 아깝지 않게 바칠 수 있는 희생입니다. 그렇게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이제 오늘 낮 시간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 계속하겠습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을 바칠 수 있는 믿음」


        오늘의 설교제목입니다. 오늘은 이 제목으로 낮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만큼 이 말씀이 중요하고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낮 시간에는 불레셋 나라에서 이스라엘 나라의 벧세메스로 가는 법궤를 실은 수레를 끌기 위하여 선택받은 두 마리의 소는


        (1) 수많은 소들 중에 특별히 선택을 받은 것이며


        (2) 그 소들은 이스라엘 나라로 가는 수레를 끌기 위한 사명을 받은 것이고


        (3)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젖 먹는 새끼까지 떼어놓고 갔으며


        (4) 두 마리가 보조를 잘 맞추어서 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5. 그 소들은 울면서 갔다고 하였습니다.




        새끼를 뒤에다 떼어놓았는데 어찌 울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또 이스라엘 나라의 벧세메스에 가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떻게 울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세상을 살다 보면 참으로 울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교회일 하다보면, 신앙생활 하다보면 얼마나 울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까?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에 울으셨던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에서 신앙생활 할 때는 많이 울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울 때에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보시고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이 죽음을 앞에 놓고 기도할 때 응답하시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을 십오 년을 더할 것이라”(왕하20:5)고 말씀 하셨고,


         하갈은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그의 한 점 혈육인 이스마엘이 목이 말라 죽어 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방성대곡하여 울 때에 하나님이 그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십자가의 길, 사명의 길은 눈물 없이 못 가는 길입니다.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 못 가는 길


        영문 밖의 좁은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 복락 얻으려면 이길 만은 걸어야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고 골고다 올라가실 때에 울며 따라오는 여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8) 고 하셨습니다.


       (시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6. 이 소들은 목적지인 벧세메스까지 잘 갔습니다.


 



         이 사명 받은 소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메어보지 않던 수레를 끌고 벧세메스까지 갔습니다. 불레셋에서 벧세메스까지의 길은 가까운 거리도 아닙니다. 지금처럼 아스팔트길이나 포장된 길도 아닙니다. 험한 길, 높은 고개, 고달프고 힘들어도, 피곤하고 목마르며 배고파도 참고 견디면서 목적지까지 갔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기는 쉬우나 마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천국에 이르기까지 어렵고 힘들어도 끝까지 가야 합니다.


        바울은 고백하기를 (딤후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라고 고백하였고 (엡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변함없이 주님 사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아 멘>




        신앙의 승리자란 끝까지 이 생명 다하여 주님 앞에 부름 받는 그날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10년, 20년 만에 중도에 포기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황소걸음 같이 느린 것 같아도, 또 남 보기에 별로 하는 일이 없는 것 같고, 큰일도 못하는 것 같아도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변치 말고, 중지하지 말고, 물러가지도 말고, 뒤떨어지지도 말고, 괴로우나 즐거우나 내게 주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 가신 그 발자취를 따라서, 꾸준히 걸어가서 최후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의의 면류관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아 멘>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찬송가 323장 1절>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7. 마지막 이 소들은 희생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법궤가 돌아왔다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뻐하면서 환호성을 지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땀 흘리면서 그 먼 길을 달려온 소들에게 물 한 모금 여물 한줌 주지 않고 수레를 쪼개서 장작을 만들고 그 소를 잡아서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 암소 두 마리는 급기야 하나님께 제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마지막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2:8절 말씀에 “죽기까지 충성하라” 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최후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교회의 임원들은 바로 이와 같은 심정으로 충성을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지고 골고다 올라가셔서 희생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 가신 그 길을 가야합니다.



               주님 가신 길


       주님 가신길 십자가의 길 외롭고 무거웠던길


       골고다의 거친 언덕길 지치신 주님의 음성 


       오나의 주님 용서하소서 죄인위해 고난 받으셨네


       이세상에 생명주시길 그렇게도 원하셨던길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때로는 교회에서 지워준 집사라는 십자가가 무겁고, 권사라는 십자가가 힘들어서 벗어버리려고도 하였고, 또 때로는 교회를 그만 다니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십자가 벗어놓게 되면 주님도 내 손 노아 버리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누구 때문에 골고다의 길을 가셨습니까? 바로 나와 여러분 때문에 그런 십자가의 쓴잔을 받으셨고 골고다의 언덕길을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존귀 영광 모든 권세는 주님께 모두 드리고 멸시 천대 십자가는 내가 지고 가겠습니다. 하는 결단이 오늘 이 시간에 있어야 합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죄 많은 이 세상에서 택하여 불러주셔서 구원하여 주셨고, 사명까지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벧세메스로 간 소처럼 「이 생명 다 바쳐서」 말없이 주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신앙은 생활이 변해야 합니다. 믿음은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약2:17,26)


        하나님이 주신 이 목숨 끝나는 그 순간 하나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 이라고 칭찬을 들을 때까지, 주님께서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실 그 때까지,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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