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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녀를 달려가게 하였나? (마2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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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녀를 달려가게 하였나? / 마28:1~10



부활절 예배를 드릴 때마다


모든 성도들이 ‘부활의 은혜’를 실감나게 경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안타깝게 봅니다. 왜 그럴까요?



▲기뻐서 막 달려간 막달라 마리아


십자가 사건 이후,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마리아는 너무너무 답답하고 슬펐습니다.


사실 그에게는 소망이 다 끊어진 것과도 같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 때문에


시신에 향유라도 발라드려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을 찾아간 것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알고


제자들에게 달려 갈 때는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막달라 마리아에게 들려주었을 때, 마리아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무섭기도 했지만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몰려 왔습니다.


마리아의 얼굴은 환희 그 자체였습니다.


제자들에게 가는데, 자기도 모르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다리 아픈 것도 몰랐을 것입니다. .. 이것이 부활절의 역사입니다.



▲부활을 믿지만, 부활의 감격이 없는 성도들


저는 처음에 성도들이


부활절 예배를 뜨거운 감동 속에서 드리지 못하는 것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에


부활절을 무기력하게 보내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부활절 설교를 통하여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설명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설교의 많은 부분을 그것에 할애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을 만나보니.. 예수님의 부활은 믿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데도,


마리아와 같은 특별한 감동은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정말 믿는 이들도


부활의 감격을 갖지 못하는 이들이 많음을 알고.. 저는 당황했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부활 신앙은



①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 것뿐만이 아니고



②그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 까지 믿어져야



비로소 마리아와 같은 놀라운 감격의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마리아로 하여금 뛰어가게 만들었을까요?


부활을 경험한 마리아가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달려가는


마음으로부터 뜨거운 열정이 일어났던 것인가요?



예수님의 부활 때문인데,


마리아에게 임하였던 놀라운 일이 두 가지임을 알았습니다.


오늘 그 말씀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1.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셨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마리아로 하여금 가슴이 터지도록 감격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 내용은, 이제까지 많이 설교가 되어졌기 때문에,


여기서 자세히 다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거의 같은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은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구나... 그것에 대한 마리아의 감격이었습니다.


이것이 마리아를 흥분하게 한 것입니다.



진정한 부활 신앙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사셨다는 것을 믿는 것만 아닙니다.



그 예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을 때.. 마리아처럼 되는 것입니다.


즉,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재적 임재를 믿는 것입니다.



만약 부활절을 맞이하면서도, 마리아의 마음 같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그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은 믿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부활절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 감동이 없이 기념식 지키듯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2.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늘 나와 함께’ 계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제자들을 흥분하게 만든 것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만이 아니었습니다. ①



제자들을 정말 흥분시킨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


그 분이 지금 자신들 눈앞에, 현재 함께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②



그렇습니다. 부활 신앙의 핵심은 죽었던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아무리 분명히 믿어도, 내 성질, 인격이 하나도 안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과, 오늘 함께 동행 하는 삶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부활신앙입니다.



▲부활을 단순히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듣고 자랐습니다.


말귀를 알아듣기 전부터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


그래서 저는 어려서부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제 삶을 변화시키지는 못하였습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믿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면


얼마나 놀라운 삶을 살았겠습니까?


마리아처럼 ‘달려가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나만 아니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살려내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단순히 모범적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셨다는 지식을 가졌을 뿐이지,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았을 뿐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 신앙을 분명하게 가지시려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가 체험적으로 만나는 데까지 가야 합니다.



▲어머니가 하늘나라에서 나를 내려다보시는 것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제 어머니는, 제가 대학 4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은 저와 동생들에게,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 줄 몰랐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에서 마지막 어머니 모습을 뵈었을 때


산소 호흡기를 쓰신 어머니께서, 제 손을 꽉 잡으셨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유언이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면서 ‘나와 내 동생들 위하여 기도해 줄 어머니가 없어졌구나!’


그것이 제일 슬펐습니다. 용인 공원묘지에서 하관식을 마치고 오는 날,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묻고 온 그 자리가 생각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는 하늘나라에서 나를 내려다보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어머니를 저 땅 속에 묻어버리고 오는 것이 아니고,


어머니는 살아서 저 하늘 위에 계시다.’ 그것이 마음에 갑자기 믿어졌습니다.



저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오히려 살아 계실 때보다, 더 구체적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 깨닫고 나니,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부활은 그것과 다릅니다.


저 천국에서 우리를 지켜보시면서 응원하시고 격려하시는 것과.. 다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을 그렇게 믿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고 난 다음에 하늘에 계시면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분으로 여기는 분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오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능력으로 도우십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예수님을 알아야


비로소 부활 신앙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성경의 내용을 알고/들은 것으로 그쳐서는 진정한 부활 신앙은 가질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성령님께서만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십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셨다는 것뿐만 아니고


그 예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우리로 믿게 하고/ 알게 하고/ 경험하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알고 경험했던 가슴이 뜨거워진 역사가


성령님이 강림하실 때.. 모든 제자들에게 똑같이 일어났습니다.



◑3.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떠나가면)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성령을 통해)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14:18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14:20



▲예수님의 호흡을 느낀 제자들


마가 다락방에서 열흘 동안 전심으로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께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이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느낀 바람은.. 하나님의 호흡이었습니다.


누가 옆에서 숨을 내쉬면 그 숨결을 느낄 수 있듯이,


마가 다락방에 있었던 제자 120명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의 숨결을 느끼려면, 매우 가까이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을 이처럼 경험하고 나서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처럼 달려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귀에 속삭일 때 자녀들은


부모가 함께 있는 것을 호흡으로 느낍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을 때도 꼭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은 나와 너무나 가까이 계신 분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체험의 본질입니다.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난 다음에 제자들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려고 막 달려갈 때처럼


제자들은 문을 박차고 뛰어나와 예루살렘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님이라고 증거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정도로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사람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진정한 부활 신앙을 가지려면, 다시 말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려면..


성령을 받아야 됩니다.



성령을 받을 때,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역사 진정한 부활 신앙을 갖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가 다락방의 성령강림 이후 성령님이 역사하는 곳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자들이 일어났습니다.



▲(무슨 신학적 영향 때문인지) 성령충만/재충만을 사모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화순에 계신 어느 장로님은, 성령충만을 사모했습니다.


그 분은 의사이십니다.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부인 권사님이 어느 집회에 갔다가


성령체험을 하고 오더니 변화되셨답니다.



이 분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런 은혜의 세계가 있다면, 왜 나는 그것을 모르는가?’



그때부터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갈망이 생겨 부흥회,


기도원에도 가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좀처럼 은혜의 체험이 없었습니다. 마음만 간절하지...


그러다가 어느 집회에 참석했는데 특별한 역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배당을 나오다가 도무지 그냥 갈 수가 없어서


다시 예배당으로 들어갔답니다.



이미 집회는 끝나 사람들이 없는 텅 빈 예배당에 앉아서


‘하나님, 저 이렇게 은혜 못 받고 돌아갈 수 없습니다!’하며 기도하는데


그 때 하나님이 그 분을 사로잡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님의 모습으로 제자들과 동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을 사는 성도는..


당연히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매 주일, 매일이 부활절입니다.


저는 고난 주간은 긴데 비하여


부활절은 너무 순간에 지나간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순절을 지내고, 고난 주간을 지내고 난 다음


부활절은.. 주일 하루면.. 다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부활절을 단순히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로 여기니


그렇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매 주일이 부활절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부활절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부활 신앙을 가지면, 놀라운 인생역전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실패자를 택하여 쓰셨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버리고 부인하였던 제자들에게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20:21



예수님께서 배신했던 제자들을 용서하신 것까지는 좋으나,


그 제자들을 복음의 사도로 쓰시겠다는 것은.. 너무 지나치신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예수님께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계획은 요20:22절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계획은 성령님의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제자들은 너무나 준비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철저히 자기 힘이 실패했고, 자기 능력이 좌절한 것이 준비였습니다.



제자들은 ‘내 의지로는 안 된다! 내 결심으로도 안 된다!’는 사실이


확실히 깨달아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오직 성령님만 의지할 마음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한 사람에게 복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께만 복종할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마치는 말


단순히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아는 것에 그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어지는 믿음 정도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면


그 부활의 주님을 내가 일상에서 만나는 자리까지 가는 것이


온전한 부활신앙입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충만/재충만의 체험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오늘을, 매일을,


부활 신앙으로 살게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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