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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중한 신앙생활 (마23: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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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중한 신앙생활/마태복음 23:23-24



어느새 종이만 담는 상자가 가득 차서 밖으로 들어냅니다. 우리 집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쓰레기는 단연 종이쓰레기입니다. 신문, 우편물, 노트, 봉투, 광고지 같은 종이쓰레기가 날마다 어찌 그리 많이 쏟아져 나오는지 모릅니다. 종이 쓰레기만 따로 담는 상자가 있습니다. 다 본 신문은 쓰레기입니다. 다 읽은 잡지와 책도 쓰레기입니다. 다 쓴 공책도 스케치북도 쓰레기입니다. 쌓아 두면 짐만 되는 천덕꾸러기입니다. 읽지 않은 신문, 새 책, 쓰지 않은 빈 공책, 스케치북은 대접을 받지만 일단 한번 읽히고 쓰여지면 그 다음에는 마치 다 마셔버린 빈 병처럼 버림을 받습니다. 빈 깡통이나 빈 병은 더 이상 쓸모가 없듯이 더 이상 나올 내용이 없으면 버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아주 드물게 다음에 다시 보기 위해 골라 놓거나 스크랩을 하는 책이나 신문이 있기는 합니다. 그것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쓰레기가 되기는 하지만요. 그러고 보면 지난 2천 년간 버려지지 않고 변함없이 우리 곁에 있는 성경은 퍼내도 퍼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샘물처럼 볼 때마다 늘 새로움을 주는 신비한 책입니다.



속과 내용은 어찌되었던 겉과 형식만 번드르하게 치장하기에만 급급하는 외식적 태도는 필경 가치관의 혼란을 초래케 합니다. 이러한 사실에 입각해 예수님께서는 십일조를 대표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든 산업과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표시로서 드려진 십일조는 레위인의 생계를 위해(민18:21-24), 혹은 성전 유지비 조달을 위해(신12:6-7), 혹은 사회적 약자들의 구제를 위해(신26:12-15) 긴요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예수님은 십일조 자체의 문제를 거론하신 것이 아니라 형식에만 치우쳐 십일조의 정신과 의미와 목적을 망각한 채 쓸모없는 일에 오용한 죄악을 지적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박하나 회향과 근채를 양념이나 약재에 쓰기 위해 가정에서 소량으로 재배 하였는데 바리새인들은 그런 사소한 것에까지 십일조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듯 철저하게 거둬들인 십일조는 종교 지도자들의 욕심과 배를 채우는 일에 허비되었던 것입니다.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의 순서를 알지 못함은 물론이고 형식적 예배와 헌금에는 충실하되 구체적 삶은 지극히 등한시하는 자들에게는 바리새인들에게 내려진 준엄한 경고가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더 중한 것을 구별하는 지혜로운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정의가 중요합니다


본문 2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박하와 회향과 근채는 이스라엘의 농작물 중 매우 사소한 수확물입니다. 이와 같이 사소한 종류를 나열한 것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레위기 27장 30절의 규례에 따라 얼마나 십일조에 철저했던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판은 이렇게 세세한 십일조 생활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음에 나오는 그들의 행실에 대한 비판을 강조하기 위하여 대비적으로 그들의 십일조 생활을 강조하였습니다. 율법의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헬라어 ‘바뤼테라’는 더 어려운 일이나 더 힘든 일이 아니라 지엽적이거나 사소한 일과 대조되는 더 중심적이거나 결정적인 일이거나 더 중요한 일을 가리킵니다. 이런 관점에서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아주 중요한 율법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율법 중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고 덜 중요한 것이 있음을 뜻합니다. 23절에 유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정의의 헬라어 ‘크리시스’는 종말적 심판과 재판이나 판단을 의미합니다. 공의와 의와 옳음을 뜻합니다. 본문에서의 정의는 정당하고 공정한 뜻으로서 인간관계의 올바름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사는 정의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도 행하고 정의로운 삶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의 때문에 십일조를 무시한다거나 폐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성도는 반드시 정의로운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큰 것 때문에 작은 것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것이 모여서 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정의는 삶의 보이는 십일조입니다. 정의로운 삶을 살 때에 십일조는 진정한 십일조가 되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하늘의 향기로운 십일조가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 생활을 하면서 정의가 아닌 불법이나 불의한 삶을 살면 아직은 부족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천당과 지옥 사이에 담장이 쳐져있는데 어느 날 아침 순찰을 돌던 천당의 경비 천사가 담장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지옥의 경비마귀에게 따졌습니다. “야~ 니들이 지옥의 죄인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않아서 이렇게 큰 구멍으로 탈옥하여 천당으로 불법입국 하잖아. 이 구멍 어떻게 할 거야?” 지옥의 마귀가 어처구니없단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야~ 우리 쪽에서 구멍 낸 증거 있어?” 천당의 천사가 약이 올라 말했습니다. “아니 천당에서 지옥으로 가는 미친 사람이 어디 있냐? 당연히 너의 지옥에서 천당으로 가려고 구멍 뚫은거 아니겠어? 이 구멍 너희가 책임지고 막아놔 알았어?” 마귀 “우리 절대 못해” 천사 “좋아, 정 못하겠으면 반반씩 부담하자” 마귀 “우리는 한 푼도 낼 수 없어” 막무가내로 우기는 지옥마귀의 배 째라는 식에 화가 난 천사가 소리쳤습니다. “좋아, 그럼 법대로 하자” 그러자 마귀가 씩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그래? 법대로 해봐, 판. 검사, 변호사, 국회의원 다 여기 있는데 겁날 거 있냐?”



법대로 하면 누구도 천국에 못 갑니다. 예수님을 끝까지 안 믿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지옥에 갑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구원 받은 천국 백성이 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물질적인 십일조는 물론 이제는 성숙하여 세상의 법은 당연하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정의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긍휼이 중요합니다


본문 2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지금 말씀 중에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긍휼이 중요합니다. 십일조는 그 기원을 족장시대에 두고(창14:20, 28:22) 모세의 계명에서 율법화한 것입니다(레27:30, 신14:22-27). 유대인은 십일조 헌금에 극희 엄격하였습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는 약용식물들로 극히 작은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고 자랑할 수 있고 땅에서 성장하는 것은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작은 것을 지키면 땅위에서 보상을 받고 큰 것을 지키면 하늘에서 보상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작은 것은 특별나게 지키면서 더 크고 중요한 것은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 모순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긍휼은 헬라어 ‘엘레오스’라고 하는데 자비로 번역을 합니다. 자비라는 말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고 사람이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의 행위를 뜻합니다. 성경에도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라고 하였습니다. 긍휼이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긍휼이 여김을 받은 축복인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긍휼이 여길 수 있는 처지나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긍휼이 여기는 자들을 긍휼이 여기는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지 않으면 죄와 허물을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와 믿음과 선행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긍휼의 열매이고 최고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찬양과 감사를 드리며 평생 하나님의 긍휼을 기도해야만 성도의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미국 롱비치 교회의 검사 출신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남편 없이 홀로 두 아들을 기르며 지극 정성으로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 형제가 마을의 한 곳에서 전쟁놀이를 합니다. 그때 그 지역의 유력자 한 분이 말을 타고 그곳을 산책하다 하필 말의 눈이 아들 형제의 죽창에 찔려서 놀란 말이 펄쩍 뛰는 바람에 떨어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아들이 재판을 받습니다. 판사가 그 형제에게 말의 눈이 누구의 죽창에 찔렸는지를 묻자 두 형제가 서로 자기의 죽창에 찔렸다고 주장했습니다. 판사가 형제의 어머니를 불러서 “부인, 한 아들만 사형에 처하면 되는데 형제가 서로 자기 죽창에 말의 눈이 찔렸다고 하니 부인이 한 아들을 정해 주시오.” 한참 침묵을 지키며 기도하던 부인이 “작은 아들을 사형에 처해 주세요.” “왜 작은아들입니까?” “큰아들은 전처의 아들이고 작은아들은 제가 낳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부인! 자기 몸으로 낳은 아들이 더 귀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제 몸으로 낳은 아들이 더 귀하지요. 그러나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교회에서 배운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큰아들을 죽게 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이 말에 감동을 받은 판사가 “부인, 오늘까지 재판하면서 이렇게 감동을 받기는 처음이오. 내가 판사의 권한으로 두 아들을 다 무죄로 석방합니다.” 그리고 그 지방의 지인들을 불러 자기가 감동 받은 이야기를 전하고 교회에 다니지도 않는 그들이 돈을 모아 교회를 잘 지어 드렸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받아서 지금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만 달란트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흘러 넘쳐야 합니다. 우리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게 용서와 사랑을 베풀어야 우리 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은 육십만 분의 일입니다(마18:35).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성도는 반드시 긍휼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서 흘러넘치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믿음이 중요합니다


본문 23-24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하루살이는 가장 작은 벌레로 포도주에 섞여 있습니다. 약대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동물입니다. 둘 다 먹을 수 없는 부정한 동물들입니다(레11:4). 지극히 작은 계명에는 까다롭게 하면서도 더 중요하고 큰 죄는 예사로 범죄하는 종교생활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기 쉽고 나타나는 일에는 생색을 내며 자랑하고 광고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모르는 척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위선적인 행위에 대한 경고이며 책망인 것입니다.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헬라어 ‘피스티스’입니다. 신뢰와 신용과 약속과 보증과 확신을 뜻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히11:6) 이웃에 대한 신뢰(시15:3-4)를 뜻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다고 하셨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신 유대인의 십일조 신앙을 무조건 비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중요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모두 지켜야 합니다. 율법을 폐하신 분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신 분이십니다. 정성껏 드리고 정의와 긍휼과 믿음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질과 삶이 일치되어야 온전한 십일조가 되고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소중히 여기며 그것 없이는 못 산다고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휴대폰이나 컴퓨터 같은 전자 기기고 어떤 사람에게는 연인이나 배우자 같은 소중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술이나 커피 같은 기호 식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없으면 정말 살지 못할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물과 공기와 같이 그것이 없이는 실제로 한순간도 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컨스피러시>(Conspiracy Theory)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음모론에 심취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회사 건물에 폭탄이 설치되었을 수 있기에 출근할 수 없습니다. 독살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염려해 외식도 마음대로 못합니다. 심지어 수도관으로 공급되는 물조차 마음 놓고 마실 수 없습니다. 만약 이처럼 삶의 모든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이 내게 닥친다면 무엇을 붙들겠습니까? 절체절명의 순간일수록 하나님 한 분만을 붙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믿음이 없다면 삶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여기서 믿음은 자신이 믿는 대로 하나님도 움직일 수 있다는 변질된 믿음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어떤 위험이 닥쳐와도 온전히 그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수많은 어려움과 역경 고통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며 죽도록 충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큰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언제 죽어도 그리고 언제 주님이 오신다고 하여도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큰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세상 무엇보다 귀합니다. 교회에서의 직분이나 신앙 연수와 사람의 인정보다 더 중요합니다. 십일조를 정확하게 드리되 믿음은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고 경중성이 있습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도 중요하지만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우선순위와 경중성에 있어서 더 우위에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충성하는 여러분 모두를 하나님이 더욱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십일조 생활도 철저히 하시고 정의와 긍휼과 믿음의 십일조 생활도 잘 하는 온전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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