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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 주인이 올때에 (마21:33-46)

본문

포도원 주인이 올때에(마21:33-46)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본문의 말씀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입니다.


비유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현실과 거의 같은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씨 뿌리는 비유는 실제로 그렇게 씨를 뿌리는 현실의 내용을 가지고 설명한 비유입니다.


악한 포도원농부의 비유는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였는가에 대한 실제적인 문제를 가지고 풀어가고 있습니다.


비유의 내용을 보면 한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갑니다.


주인은 포도원은 완벽하게 만들었습니다.


좋은 땅에다 좋은 포도나무를 심은 것은 물론이고 포도원을 보호할 수 있는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도 만들고 망대까지 세웠습니다.


이런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그냥 준 것이 아니라 세로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했습니다.(딤전6:7)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는 우리들이 이렇게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풍성한 것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요 우리는 세를 얻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다 놓고 떠나야 합니다.


 


좋은 포도원을 세로 얻은 농부들은 당연히 주인에게 세를 바쳐야 했습니다.


때가 되어 세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냈지만 농부들의 태도는 아주 고약했습니다.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돌로 치고 하나는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심히 매를 맞은 종을 선지자 예레미야라고 하고 돌에 맞은 종은 스가랴 선지자라고 하고 죽임을 당한 종은 톱에 켜서 죽은 이사야 선지자를 말한다고 합니다.


농부들의 행동이 정말 잘못되었지만 주인은 참고 다른 종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농부들의 태도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생각하다 못해 주인은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종들이 아닌 내 아들을 보내면 공경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마침내 자기 아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농부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 아들은 상속자니 그를 죽이고 우리가 이 포도원을 갖자는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이 비유는 주인의 아들이 죽은 것으로 끝나게 되는데, 주님은 이 비유를 끝내면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제자들이나 이스라엘 백성이나 오늘 우리들이나 누구에게 물어봐도 똑같습니다.


“그 악한 자들은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상식이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가 주목해 보야 할 중요한 내용이 있는데요, 그것은 주인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면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고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 것은 분명한데 아직 그 주인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악한 농부들에게도 아직은 기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 기회를 살리느냐 살리지 못하느냐에 따라 용서받을 수도 있고 진멸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축복을 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맡기신 것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은 세를 잘 바치는 선한 농부입니까? 아니면 세도 바치지 않고 보낸 종들을 죽이고 때리는 악한 농부입니까?


주인이 오실 때 여러분들은 진멸을 받을 자입니까? 아니면 칭찬을 받을 자입니까?


어떤 자이든 주인은 아직 오지 않았고 아직도 기회는 주어져있습니다.


그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고 우리의 남은 삶을 다짐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이 비유는 포도원 주인은 반드시 오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 비유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주인이 와서 악한 농부들을 진멸해야 하는데 그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40절 말씀을 보면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으로 이 비유는 미완성인체로 끝납니다.


아들이 죽임을 당했는데도 주인은 악한 농부를 진멸하기 위해서 오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오지 않은 것에 대해 당시 농부들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무서워서 주인이 오지 않는가보다. 우리 계획대로 모든 것이 잘 되었다. 이제 포도원은 우리의 것이 되었다. 야호.’


여러분, 이렇게 생각했다면 얼마나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정말 주인이 농부들을 무서워하고 그들을 진멸할 힘이 없어서 오지 않은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이오지 않은 것은 아직도 참고 인내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에서 베드로사도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회개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주인은 오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이유로 오랜 세월동안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초대교회당시부터 오신다고 했던 주님이 2천년이 지나도 오시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된 말이 아닐까?’


‘아직까지 오시지 않았다면 아예 오시지 않는 것이 맞는 애기 아닐까?’


그러나 주인은 반드시오십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오래 참고 기다리시지만 그렇다고 정말 안 오시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갑자가 도둑같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악한 자들을 심판하고 선한 자들을 축복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신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정말 잊지 말고 꼭 기억해야 할 참으로 중요한 사실이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입니다.


회개하고 구원받을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오래 참고 기다리시지만 그렇다고 안 오시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2. 포도원 주인이 다시 오는 것은 악한 자를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40절)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농부들을 어떻게 하기 위해 오신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악한 자들을 심문하고 난후에 진멸하실 것입니다.


 


먼저, 왜 세를 바치지 않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내가 좋은 포도원을 너희에게 세로 주고 떠났거늘, 너희가 세를 내겠다고 약속했거늘 왜 세를 바치지 않았느냐?’


이것이 주인이 와서 분명히 따지고 심판하실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위탁받아서 사용하고 누리는 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께 세를 바치고 하나님께 드릴 것을 드리는 일입니다.


세를 바친다는 말은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심을 인정하고 감사하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는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믿고 하나님을 공경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공급받아서 살다가 하나님께 반납하고 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공경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하지 못하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를 심판하실 때에 왜 세를 바치지 않았느냐?


왜 나를 공경하지 않고 왜 나를 섬기지 않고 왜 나에게 감사하지 않았느냐는 질문 앞에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둘째로, 주인이 심문하실 내용은 왜 내 아들을 죽였느냐는 것입니다.


 


종들을 죽이고 때리고 괴롭힌 것도 물론 잘못한 것입니다만 그 일은 백번 양보해서 용서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을 죽인 것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혈육이며 분신이며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을 공경한다고 하면 당연히 아들을 공경해야 합니다.


주인을 사랑한다면 아들을 사랑해야 하고 주인을 존경하고 귀하게 여긴다면 아들을 존경하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모세보다 뛰어난 것을 모세는 종으로 충성하였지만 그리스도는 아들로 충성하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종으로 섬기는 자와 아들로 섬기는 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왜 우리가 천사보다 뛰어납니까?


천사는 섬기는 종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아들을 죽인 농부들은 절대로 용서받지 못하고 거기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주인의 아들을 죽였다는 비유는 주님께서 아들로 이 땅에 오셨지만 사람들에 의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미리 말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하시려고 이 땅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아들을 무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공경하지는 못할망정 십자가에 죽였다고 하는 것은 정말 용서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공경하지 못하고 죽이는 자들을 다시 오실 주님은 분명히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우리는 모두 이 질문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너는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공경하였느냐?’


이 질문 앞에 예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질문 앞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젓는 불행한 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3. 포도원 주인이 오실 때에 하게 될 또 하나의 일은 선한 자를 찾으시는 일입니다.


 


41절 말씀을 보면,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주인은 분명 세를 바치지 않은 자들과 종들과 아들을 죽인 자들을 진멸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에 머물지 않고 그 포도원을 맡길만한 선한 농부를 찾으십니다.


그 포도원을 그냥 둘 수는 없으니까요.


저는 이것이 세상 끝 날에 이루어질 일일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선한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은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면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진정한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은 예루살렘 거리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을 물리치시며 선한 자들을 찾으셔서 좋은 포도원을 맡기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릇이 어떤 그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그 그릇을 깨끗하게 하느냐가 주님이 쓰시는 그릇됨의 기준입니다.


아무리 질그릇 같아도 깨끗하게 자신을 가꾸면 주님께서 귀하게 쓰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금 그릇 같아도 자신을 깨끗하게 가꾸지 않으면 주님께서 절대 사용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주님이 주신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의지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포도원을 맡길 다른 농부를 찾으시는 주님께서 좋은 포도원을 맡기고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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