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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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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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


 


▶2차 대전 때 생긴 이야기입니다.

  영국 비행기와 독일 비행기 사이에 공중전이 벌어졌습니다. 영국이 이겼습니다. 독일 비행기를 격추시켰습니다. 독일 비행기가 폭격에 맞아 격추되었습니다. 영국 비행사는 독일 비행사를 염려하면서 비행기가 떨어진 현장에 착륙하여 보니 독일 비행사가 죽어 있었습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사진 한 장이 나왔습니다.

  어머니 사진이었습니다. 그 밑에 이상한 글이 써있었습니다. '너의 어머니' 이 말이 이상하였습니다. 그의 시신을 비행기에 싣고 와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주소를 물색하여 그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당신의 아들을 죽인 영국 비행사입니다. 나는 죽이고 싶어 죽인 것이 아니라 전쟁이기에 어쩔 수 없이 죽였습니다. 미워서 죽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당신 아들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 부대를 그 비행기가 공격하여 우리 군사들이 수없이 죽을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죽였습니다.

  나는 당신 아들을 죽인 후 따라 착륙하여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어머니 사진이 나왔습니다. 나는 어려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어머니가 살아 있는 사람을 보면 부러웠습니다.

  저는 비록 당신 아들을 죽였지만 당신을 어머니같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어머니 같아서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눈이 눈물로 흐려져 더 이상 쓸 수가 없군요.'

  이 편지는 중립국을 통하여 어머니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영국으로 답장을 보냈습니다.

  '보내주신 편지를 받기 전에 나는 이미 내 아들이 비행기가 격추되어 전사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편지를 받기 전에는 아들을 죽인 사람을 원수같이 생각하였으나 이 편지를 받고 보니 죽은 아들이 살아난 것 같아 감격입니다. 전사한 아들이 살아나서 편지를 보내는 것같이 생각됩니다. 죽이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다 자기 조국을 위한 것이 전쟁이지요. 

  당신은 나를 어머니로, 나는 당신을 아들로 느끼고 있습니다. 무슨 인연일가요? 당신이 죽인 내 아들은 세 아들 중 막내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우리 집을 방문하여 주십시오. 나는 아들로, 형 둘은 동생으로 당신을 맞을 것입니다. 속히 그 날이 오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너의 어머니로부터'


 


  ▶유대인 마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한 남자가 죽었습니다.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장례식에 갈 예정인가?' 

  친구가 말했습니다. '내 장례에 오지도 못 할 사람에게 왜 가나?' 이것이 사람들의 보통 심리입니다.


 


  ▶일본 쇼오와 29년 9월이었습니다.

  수많은 승객을 싣고 항구를 출발한 도오야 마루호가 하꼬다네에서 전복되었습니다. 승객에 비하여 구명 조끼가 부족하였습니다. 구명 조끼를 차지한 사람은 모두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명 조끼가 없는 사람은 장시간 버틸 수가 없기에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미국 두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한 분은 삿포로에서 선교하고 있었고, 다른 분은 오비히로에서 선교하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이들은 2등 칸에 타고 있었기에 구명 조끼를 배정 받았습니다. 

  두 선교사가 물위에 가만히 떠 있었습니다. 이제 구조선이 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 때 일본 두 청년이 허우적거리면서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두 선교사는 약속이나 한 듯이 구명 조끼를 벗었습니다. 그리고 두 명에서 각각 던지며 말했습니다.

  '지금 일본은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은 깊은 감동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토스토에프스키는 말했습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이 가장 행복한 사랑이다.'

  어거스틴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남에게 한 가지 친절한 일을 하여 주고 은근히 채권자 같은 마음으로 그 보답을 기다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좋지 않다. 친절하려면 무엇보다도 순수하여야 한다. 그 곳에 아무 목적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 친절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세상을 살면서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도 참 행복한 삶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함께 대화하고 이웃하며 살아가는 삶은 기쁘고 만날수록 행복한 만남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좋지 않은 만남도 있습니다. 그래서 만나면 마음이 불화하고 갈등하는 만남도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한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도 축복입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원래 정치가가 되는 것이 목표였는데 어느 날 소크라테스라는 당대의 위대한 철학자를 만나는 순간 장차 철학자가 되기로 작정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플라톤이라는 철학자가 탄생하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 같은 만남의 기회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 만남에는 두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하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살아 가다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면 참으로 행복한 삶이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좋은 만남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할 일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내가 좋은 사람으로 만나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도 좋은 사람을 만나서 유익이 되어야 하지만 나로 하여금 상대방이 유익이 되고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변화하게 만들어 준다면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난 것 보다 더 좋은 만남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를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이끌어 준 사람은 하늘의 별처럼 빛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만남의 법칙입니다. 어쩌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 보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만나 주는 것이 더 좋은 만남일 것입니다. 모두 축복입니다.


 


  ▶음악가 아르트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3.25-1957.1.16)는 소년 시절 음악재질이 아주 특출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아주 심한 근시안이었습니다. 시력이 좋지 않아 그는 악보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 눈을 밝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하는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간절한 기도와는 상관없이 날이 갈수록 그의 시력은 더 어두워져 갔습니다. 그때 그는 너무나 실망했습니다. '왜 응답이 없을까?'

  그가 간절하게 기도했을 때 즉시 응답해 주였더라면, 그의 어두운 눈을 밝게 하셔서 악보를 볼 수 있게 해 주였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응답은커녕 날이 갈수록 시력은 더 떨어져 마침내 그는 악보를 볼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은 그에게 악보를 송두리째 외울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악보를 송두리째 외워서 자신 있게 첼로 연주를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연주회를 하던 날 지휘자가 갑자기 병으로 누워 지휘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임시로 악보를 송두리째 외우는 토스카니니가 지휘자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악보를 모두 외우는 그로서는 자신 있게 지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그 유명한 지휘자로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그때서야 그는 비로소 자신에게 시력을 회복시켜 주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때 비로소 자신의 심한 근시안 때문에 위대한 지휘자가 될 수 있었음을 깨달아 알고 그는 비로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한 때는 실망하기도 했지만 어두운 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그 즉시로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셨지만 언제나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기다리시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묘미입니다. 언제나 깊은 진리는 감추어있는 법입니다. 강자가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쫓기던 사람이 언제나 약자도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을 그믐달처럼 기울게 하시고 다윗을 보름달처럼 흥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당신은 나의 요새시오 나의 바위시오 나의 주님'이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들면서 이렇게 살게 하셨느냐? 그것은 곧 사랑의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가정은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친히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신 데 사랑의 하나님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가? 사랑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사랑의 관계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친구를 만나면 친구의 우정이 있습니다. 선생님을 만나면 사제간의 정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만나면 모성애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부부의 사랑으로 표현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할 때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 적 사랑입니다. 아가페 적 사랑은 희생적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희생적 사랑을 부모의 사랑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자녀를 낳을 때 자기 몸의 살과 피를 담아서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사랑을 부부의 사랑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 고백을 통해서 만나는 사랑을 부부의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부의 사랑은 하나님을 아는 사랑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부모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은 자기 몸을 희생하므로 나타낸 사랑인데 이 사랑의 실천, 이 사랑을 보이는 곳이 가정입니다. 

  부모를 통해서 아는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크고 더 진한 사랑이 부부를 통해서 아는 사랑인데 부부를 통해서 아는 사랑을 성경은 아가페 적 사랑으로 표현해 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보'라고 자처했던 양주동 박사님이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서울의 기독교 계통 어느 여학교 학생을 열렬히 짝사랑하였습니다. 시적인 문장력으로 실력을 다해서 연애편지를 여러 번 썼습니다. 여학생의 마음을 후려 잡을 만큼 좋은 문장을 골라서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회답은 없었습니다. 기숙사에 호랑이 같은 사감 선생님이 있어서 연애편지가 날아 들어오는 족족 읽어보고 그 여학생한테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양주동은 묘안을 궁리했습니다. '미션스쿨이니 성경구절이라면 그 무서운 사감 선생님도 본인한테 전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성경 구절에다 내 마음을 담아 보내면 될 것 아닌가' 그래서 그가 써보낸 성경 말씀은 요한일서 4장 7-8절과 로마서 12장 9절, 그리고 요한일서 4장 28절, 마가복음 10장 7-9절 등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8)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12:9),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요일 4:18), 그리고 마침내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막10:7-9) 하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를 받고 그 여학생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런 남자면 좋다.' 그래서 둘이 결혼했습니다.


 


  ▶한 몸의 신비가 있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부부의 관계는 한 몸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세 가지 관계로 만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주로 모십니다. 그래서 나는 주의 종이 됩니다. 종은 일합니다. 거기에서 삯을 받습니다. 칭찬을 받고 상을 받습니다. 이것은 율법의 관계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예레미야가 모두 하나님을 향해서 종이라고 했습니다. 

  이 관계보다 더 나은 관계가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십니다. 아버지 자녀가 되면 생명을 받고, 보호를 받으며 상속을 받고, 도움을 입습니다. 이것은 도움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깊은 관계가 있는데 이것은 신랑과 신부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행복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뜰에서 만나는 하나님, 성소에서 만나는 하나님, 지성소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가정으로 말하자면 마당에 서 있는 사람은 종입니다. 거실에 앉아있는 사람은 자녀입니다. 안방에는 있는 사람은 신랑과 신부입니다. 여기는 신비의 세계입니다. 안방은 행복의 세계입니다. 한 몸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을 믿되 뜰에서 믿는 하나님, 거실에서 믿는 하나님, 안방에서 믿는 하나님이 있는데 안방에 들어간 성도는 하나님과 내가 한 몸을 이룹니다. 이것이 신랑과 신부의 관계입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명령을 거역하면 벌을 받습니다. 아들은 보호를 받습니다. 보호를 못 받을 때는 떠나버립니다. 그래서 부모의 보호를 입을 때만 자녀입니다. 그런데 부부는 서로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만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신랑이 신부를 사랑하고 신부가 신랑을 사랑하는 관계, 이 관계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을 나의 임이라고 고백하는 단계입니다. '주여' 하다가, '아버지' 하다가, '임이시여' 하다가 내가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경지에 갈 때, 그때 그 하나님은 나의 전부가 됩니다. 이런 하나님을 만날 때만 행복한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종과 자녀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향해서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행복하게 할까' 이런 생각을 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주께 이 몸을 드려서 주님이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부부가 안방에 들어가서 벌거벗을 때는 신비의 경지에 이르는데 둘이 한 몸을 이룰 때 이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어떻게 하면 남편을 행복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내 아내를 행복하게 할까' 이 경지에 가야 안방에 들어간 것입니다. 

  자기 위주로 살면 안됩니다. '어떻게 하면 아내를 행복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남편을 행복하게 할까' 이것이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진정한 주님을 만날 때 바로 천국의 한 세계를 신비로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폴란드의 귀족 출신인 캐서린은 스웨덴의 왕자 존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권력다툼에 휘말리면서 그의 형 에릭에 의해 평생토록 감옥살이를 하게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존은 에릭이 국왕으로 있는 동안 감옥에서 나올 수 있는 처지가 못되었습니다. 남편이 이 같은 일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부인 캐서린은 급히 스톡홀름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나아가 간청했습니다.

  '폐하, 저를 남편이 있는 감옥에서 함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왕이 대답하였습니다.

  '캐서린, 그대의 남편은 평생동안 햇빛을 볼 수 없소. 그것을 알고 간청하는 것이오?' 캐서린이 말했습니다. '폐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무죄이건 유죄이건 그는 저희 변함 없는 남편입니다.'

  왕을 측은하다는 눈빛으로 캐서린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캐서린, 그대의 남편이 감옥으로 보내진 순간부터 그대는 그와의 서약에서 이미 풀려났으니 이제 그대는 더 이상 그의 아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러자 캐서린은 손가락에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들고서 말했습니다. '폐하, 부디 이 반지에 새겨져 있는 글을 읽어 주십시오.' 거기에는 '오직 죽음으로만'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결국 왕은 그녀를 설득시키지 못하고 감옥에 보냈습니다. 

  캐서린은 17년 동안을 그녀의 남편과 함께 힘든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국왕 에릭이 죽은 후 햇빛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직 죽음만이 이들 부부를 갈라놓을 수 있을 뿐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이들의 사랑을 방해할 수 없었습니다. dl 사실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부부의 한 몸 되는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날마다, 날마다 전진하는 사랑은 그리스도와 한 몸 되어 사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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